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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16. 2016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면...

윤소평변호사

잘 나가는 친구가 연락할 가능성보다 내가 연락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질문거리가 있기도 하고, 관계유지를 위해서도 나란 존재를 그 친구에게 가급적, 정기적으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살면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적 확신도 있다.


잘 나가는 친구에게 어렵사리 연락을 하면 보통 첫 마디가 "바쁘지?"다. 전화를 받는 걸 보면, 지금 나에게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임을 알면서도 "통화 괜찮냐?"라고 새삼 확인한다.


몇 가지 약속이 있음에도 선약을 취소하면서 친구의 스케줄에 따라 약속을 정하기도 하고, 아무 약속이 없음에도 괜히 일정이 있는 것처럼 에둘러 얘기한 다음 술 약속을 정한다. 내가 가증스럽기도 하고, 비굴하기도 하다.


약속으로 정한 날, 잘 나가는 친구를 만나는 날에는 괜히 복장에도 신경을 더 쓰고, 약속장소에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잘 나가는 친구를 만나면 "나도 방금 왔어"라고 거짓말한다.


몇 순배의 소주를 들이키기까지 안부를 묻고, 마누라랑 애들은 잘 있는지, 아이 이름을 어렵게 기억해 내서 몇 살인가를 묻기도 하는 등 영양가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시간을 보낸다. 취기가 돌기 시작하면 또 옛날 얘기로 돌아간다.


잘 나가는 친구가 과거에 나보다 못 나갈 때 얘기를 꺼내고 싶어진다. 그래야 잘 나가는 친구의 기를 누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잘 나가는 친구에게 부탁말을 하기까지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잘 나가는 친구의 못 나가던 예전얘기를 농담과 해학을 섞어가며 기분나쁘지 않게 한 후 돌아오는 답이란, "내가 그랬었나"이다.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고, 기억하지만 잘 나가는 친구도 못난 과거의 모습을 제 입으로 담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시작한다. "저기, 근데 말이야". "내가 요즈음 이런 일을 해 보려고 하는데, 네가 그 쪽으로는 전문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반응을 열심히 살피면서 본론을 얘기한다. 웃자고 꺼낸 좀전의  잘 나가는 친구의 과거 얘기를 괜히 했나 싶기도 하다. 살짝 후회를 하기도 하고, 화법과 대화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음~. 그게 궁금했구나. 근데, 나도 잘 모르고, 너한테 별 도움을 줄 수가 없어"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거절을 해도 될텐데, 긴 질문 끝에 짧은 답이 돌아온다. 갑자기 잘 나가는 친구와의 약속을 잡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정력이 아깝고,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 질 뿐만 아니라, 소고기값이 아깝기까지 한다.


"그래, 그렇구나". 이제부터는 계속 소주를 마시고, 현장에 있지도 않은 친구들을 기억해 내며, 뒷담화를 한다.


헤어지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별 볼일 없던 녀석이 어떻게 저렇게 되었고,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복기한다. 분명, 부모의 덕이거나 운이 좋았거나, 심지어는 부정과 비리에 의해 잘 나가는 친구의 현재 위치가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잘 나가는 친구의 환경이었다면 이렇게 살진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적인 상상까지 한다.


귀가할 때까지 배 속이 뒤틀리고, 기분이 나쁘다. 잘 나가는 친구가 내가, 남이 알지 못 하는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그가 남달리 자기 관리와 계발을 하였는지, 이런 퍼져티브한 가정과 분석은 전혀 할 수가 없다. 배알이 꼴린 상황이기 때문에 잘 나가는 친구에 대한 네거티브한 평가와 결론만이 온통 머릿속을 채운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잠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듯 "아빠가 너한테 어떻게 해 주는데, 공부 열심히 해 임마!"라고 한다.


잠을 청하려고 누우면,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 참으로 모자란 생각이고, 진심으로 잘 나가는 친구에 대해 축하해 주지 못하고 질투와 시기로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연이어 연상한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잘 나가는 친구가 잘 난 척을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고, 나의 부탁으로 시간을 내어 준 것도 사실임에도 진정 우정의 시간을 갖지 못 하고, 숨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은 자신임을 깨닫는다.


잘 나가는 친구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 하겠지만, '친구야! 잠시라도 너를 폄하한 것, 미안타.'라고 용서를 구한다.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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