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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22. 2016

기부가 최선인가

윤소평변호사

2010.경 살면서 선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매월 기부를 하기로 했다. 통도 어찌나 컸는지, 아니면 좋은 일이니까 기분이 나서인지 월 30만원씩을 결손가정에 보내기로 약속을 했다.


이 가정은 할머니, 아들, 딸(10세), 아들(8세)인 가정으로 아들, 그러니까 자녀들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에 준하는 장애를 가지면서 배우자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심경을 실행에 옮겨 장애인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가출한 후 연락이 닿지 않는 집이었다.


할머니가 주위 사람들과 자선단체, 기초생활수급 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을 돌보고, 두 손자녀들까지 양육하고 있었다. 직접 집에 방문해 보니 할머니의 주름과 휘어진 허리가 기부에 대한 욕망을 불사질렀다.


나는 그렇게 꾸준히 1년 6개월 가량을 매월 30만원씩 담뱃값을 아끼고, 술값을 절약해 가며 약속을 이행했다.


어느날 두 아이가 피아노학원 원장의 도움으로 무료로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거참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를 배울 수 있어서 좋겠구나" 

피아노 학원이 2층에 있는데, 1층이 고깃집이어서 고기 냄새가 학원으로 침투하는 그런 건물에 있었다.

"학원 마칠 때가 되면 고기냄새가 나서 너무 배도 고프고 고기도 먹고 싶어요"


나는 사무장을 시켜 아이들을 사무실 근처로 나오게 했고, 소고기와 양념갈비 등을 아이들이 원하는데로 사 주었다. 아이들 앞이라 소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변호사의 위신을 지켜가면서 웃기만 했고, 그날의 '나'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집단소송이 패소를 맞게 되면서 사무실 사정이 한 때 좋지가 않았다. 결손가정에 지급하는 월 30만원의 기부금도 부담이 되었다. 이들을 생각하면 기부를 단절할 수는 없고, 금액을 줄였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급기야 나는 10만원을 줄여 버렸다.


사무실 직원들 급여일이 25일이어서 기부금도 같은 날 집행이 되었는데, 다음날 할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왜 20만원밖에 들어오지 않았냐는 것이다. 우리 사무장이 이래저래 상황설명을 했다. 할머니는 그런 사정이었다면 미리 얘기를 하고, 20만원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아~". 나는 그간의 나의 행동과 노력들이 허무해지고, 할머니의 말씀에 대해 서운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가정은 나의 기부금에 대한 고정적인 기대와 지출내역에 대한 생활비 충당이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사실 10만원은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경우에는 10만원은 상당히 큰 금액일 수 있다.


이 일로 나는 생각했다. 기부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나, 제 분수껏 해야 하고, 기부를 하더라도 상대로 하여금 고정적인 기대를 갖게 해서는 안된다. 이 가정에 대한 기부는 몇 개월을 지속한 후에 그만 두었고, 지금은 직접 기부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기부단체를 통해서 조금 기부하고 있다.


기부가 필요한 것이고, 선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자립도를 낮추게 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며, 상대방으로부터 진심어린 감사가 피드백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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