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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25. 2016

머리깎는 날, 우유부단의 극치

윤소평변호사

머리를 자르기로 한 날을 특별히 정하지 않는 이상 대강 특별한 일정이 없거나, 또는 특별한 일정을 준비하거나, 거울을 훑어 보고 지저분하거나, 아니면, 이별을 하였거나, 기분전환을 위해서거나 등등의 이유로 머리를 자르기로 한다. 


미용실에 전화를 넣어 예약을 하는 것이 보통일 수 있겠지만, 남자들은 그냥 미용실로 몸을 이동한다. 가기 전에 머리를 감는 경우는 좀 드물다. 그런데, 막상 미용실 앞에 당도하였을 때에는 미용실 점포 유리에 비친 헤어스타일이 괜찮은 듯 싶다. '굳이 지금 머리를 잘라야 하나? 머리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왕 머리를 자르기로, 하기로 하였으니 문을 열고 들어가 머리를 자르거나 한다. 


다시금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가운데, 헤어디자이너(미용사)가 "머리 어떻게 해 드려요?"한다. "한달 전쯤 처럼, 지난번처럼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고, 알아서 내 맘에 들게 해 주었으면 하는데,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 "옆 머리는 어떻고, 앞 머리는 너무 짧게는 말고, 윗 머리는 볼륨감있게~~". 어쩌구, 저쩌구. 두려워진다. 제대로 말을 하고, 이 양반이 알아들었을까.


시작된다. 디자인이. 머리를 하는 순간이나 잘리는 순간에 간간히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순간들이 발생한다. 눈을 감기 때문인데, 눈을 떴을 때는 내가 원하는 머리가 완성되어 있기를 바라지만, 집게와 가위, 바리깡이 오갈 때 보기 싫은 내 모습이 간간히 거울에 비친다. 머리를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이런저런 후회, 고민, 기대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갈등을 겪고 있다보면 다 되었다고 디자이너가 말한다. 그리고, 거울로 뒷통수, 옆통수 등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길이는 어떠세요?, 모양은요?".


아! 어색하다. 균형이 맞지 않는 듯 하기도 하고, 원하던 스타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주나 두주 후에 자를 걸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하지만, "괜찮습니다"라고 한다. 일부는 허위다. 일부는 마음에 안 드는데. 


새로운 미용실이나 같은 미용실의 다른 미용사에게서 머리를 자를 경우에는 큰 부담이 든다. 원하는 스타일을 물어봐 놓고서는 결국, 미용사 재주와 스타일대로 머리를 만들어 놓는다. 미용사와 안면을 틀때까지 수난은 계속될 수 있다. 미용사가 머리를 마무리해 주면 더 어색해진다. 


아무튼 어색한 머리를 이고 돈을 지불한 다음에는 미용실을 나와 지나치는 상점의 거울이나 정차되어 있는 자동차의 유리에 머리를 비추어 본다. '어색하다. 에이, 무언가 잘 못 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집에 와서는 그런 후회가 더 가중된다. 만약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하러 간 날, 이런 불만이 든다면 기분전환에는 실패한 셈이다. 


머리를 깎거나 하는 날, 우유부단함은 극에 달한다. 망설임을 최소한 두세번은 한다. 하지만, 다행이 머리는 자란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면 우유부단을 깨고 선택했던 결정에 대해 후회같은 것은 남지 않는다. 그리고, 또다시 머리를 자르기로 한 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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