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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n 19. 2016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것

윤소평변호사

유언(遺言)은 죽음에 임박해서 생존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말이고 법적으로는 생전에 하는 의사표시로서 법률관계나 법률효과가 사후에 발생하도록 하는 상대방없는 단독행위를 말합니다. 법률적으로 유언의 종류에 따라 일정한 방식과 요건을 갖추어야 유효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유언의 방식과 요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ysp0722/47


# 허무한 유언


청개구리 엄마는 아들에게 "강가에 무덤을 쓰라"라는 진의아닌 유언을 남김으로써 아들 생전에 비만 오면 울게 하였습니다.


# 유언의 길이


가장 짧은 유언은 독일 칼타우쉬가 1967. 1. 10. '모든 것을 아내에게'라는 유언인데, 이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하고 견줄만 합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이 말이 유언인지는 확실한 분류가 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긴 유언은 미국 프레데리카 쿠크 부인이 유언으로 9만 5940단어, 4권으로 적어 제본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유언을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듯 합니다.


# 충국열사의 유언


안중근 의사는 "죽은 뒤에 뼈를 하얼빈 공원 근처에 묻어두었다가 나라를 되찾으면 고국으로 옮겨 다오. 천국에 가서도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독립의 소리가 하늘에 들려오면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후에도 왜적을 물리치는 충혼을 보여 주었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손톱이 빠지고, 귀와 코가 잘리고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 가 없다. ~~중략~~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뿐인 것이 유일한 슬픔이다"라는 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두 아들에게 "너희에게 피와 뼈가 있다면 조선을 위해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외에도 많은 충국열사들의 유언은 후세에도 많은 귀감을 주고 있고, 그 비통함과 무거움이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 회한이 섞인 유언


알렉산더


"죽어서 육신이 누울 공간은 한 평인 것을..., 이 한 평을 위해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수만리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세상을 정복하고자 하는 꿈도, 지평을 넓히고자 하였던 꿈도 죽음에 가려지면 허무해지는 것인가 봅니다.


중국 오나라 오자서

"내 눈을 뽑아서 오나라 성문에 걸어놓고 시신은 가래나무 아래 묻어달라"


오자서는 오왕 합려, 그 아들 부차와 함께 초나라를 치고, 월나라에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오왕 부차는 자만에 빠져 오자서의 직언을 배척하고 월왕 구천을 살려주고 간신 백비의 말에 넘어가 오자서를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오자서는 월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가래나무로 오왕의 관을 짜는데 사용하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오왕 부차는 이 말을 듣고 오자서의 시신을 강에 버립니다.


# 지켜져서는  안 되었거나 지켜졌어야 하는 유언


삼국지의 유비


유비는 제갈공명에게 "내 아들이 무능할 경우 공이 직접 제위에 오르라"라고 유언을 했는데, 제갈량은 유비에 대한 충정을 지키려는 신의를 발휘하는 나머지 무능한 유비의 아들 유선을 보필하다가 결국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유언을 위반해서 스스로 촉국을 다스렸다면 삼국을 통일해서 삼국지의 내용이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효율적인 계획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세상인듯 합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


"앞으로 고구려를 절대로 침범하지 말라"


이세민이 고구려 안시성을 침범했다가 양만춘 장군에게 패하고 부상을 입은 후 혼이 난 기억이 남아 이런 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후련한 느낌을 주는 유언이라 하겠습니다.


연산군 어머니 폐비윤씨


"원자가 목숨을 보전하거든 나의 원통함을 말해 주고, 임금이 거동하는 길에 묻어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 달라"


연산의 아버지인 성종은 왕비 윤씨를 폐위시킨 뒤 사약을 내렸는데, 유언으로 "나의 사후 100년간 폐비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하나의 유언은 지켜졌다면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았을 것이고, 어느 하나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어야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언 중에는 정리와 바램 이상의 처절함, 복수 등이 깔려있는 것들도 있는데, 자기 인생과 바램을 차치하고 비수를 담아놓은 유언을 할 정도면 그 해당 죽음이 상당히 억울했나 봅니다.




그밖에도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스피노자',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최영 장군의 아버지 유언) 등과 같이 유언인지 명언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유언은 사람이 행한 그 어떤 말이나 글 중에서 가장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잘 보일 것도, 허세를 떨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언은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만의 최종적이면서 집약적인 추출물일 것입니다.


회한이 들지 않고, 후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유언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어슴프레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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