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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l 10. 2016

CCTV의 사각지대

윤소평변호사

# 아파트에서의 주차상황


아파트에 살아보면 기온이 따뜻한 계절에는 지상 주차장에 주차공간이 부족해지고, 겨울철에는 지하 주차장 공간이 부족해진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이 2층 이상으로 되어 있는 경우, 주로 1층에 주차를 하기를 원하고, 지하 2층 이상의 주차공간은 대부분 널널한 경우가 많다.


2012.경 어느 늦은 밤 술자리를 파하고 대리운전을 통해 귀가했다. 그런데, 지상 주차공간도, 지하 1층 주차공간도 빈 자리가 없어서 지하 2층 주차장의 비어 있는 자리에 주차를 했다. 대리운전 기사님이 내가 몇 동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우리 동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다소 먼 곳에 주차를 하였다.


# 타이어 4개 펑크나다


이튿날 출근을 하기 위해 차에 올라 앉았는데, 평소와는 다른 승차감을 느꼈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타이어 4개 모두가 바람이 빠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단, 비상전화로 렉커를 불렀고, 견인하기 전에 간단한 검사를 했다. 바람이 빠진 것이 아니라 타이어 4개 전부가 측면에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이다.


# 자체 조사와 용의자 확인


직감적으로 누군가의 고의적인 손괴행위라고 생각하고 관리 사무소로 가서 전날 주차한 시각부터 출근을 위해 차량 탑승할 때까지의 CCTV를 보여 달라고 했다.


 CCTV 녹화영상을 수사관처럼 골똘히 보고 있노라니 SUV 차량 한대가 내 차 앞에 정차하였고, 그 운전자가 하차하여 내 차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이 아닌가. '걸렸구나' 하면서 그 차량의 번호를 적었고, 이를 관리소장, 입주자대표회장에게 알렸다.


일단,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지는 않았고, 해당 차량의 소유주에게 확인을 먼저 했다.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장이 해당 세대에 연락을 취하고, 자초지종을 말하자 차량 운전자는 나타나지 않고, 그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 왈, "아들이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 하고 해서 스트레스가 심했던 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변상하겠습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연세 지긋한 분이 사과를 하시고, 변상을 하겠다고 하니 화를 가라 앉히고,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집에서 쉬는데, 다시금 차량 운전자의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잠시 만나자고 했다. 공원으로 나가보니 아들과 함께 그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왈, "내 아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하네요. 변상을 못 하겠습니다", 아들 왈 "내가 그러는 거 봤어요?". 이러는 것이 아닌가. 조석변개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 정식고소와 불기소처분


나는 관할 경찰서에  CCTV 자료와 함께 정식으로 운전자를 고소했다. 그리고,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담당 수사관이 내게 하는 말이 "피고소인(운전자)이 1분 30초 가량 고소인(나)의 차량 주위를 배회하고 침을 뱉고 한 것은 확인됩니다. 그런데,  CCTV 영상에 타이어를 손괴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군요"라는 것이 아닌가. 운전자는, 내가 자작극을 꾸민 짓이라고까지 진술하는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에 자기 승용차의 타이어를 일부러 펑크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수사는 진행되었고, 얼마간 지나자 수사결과가 검찰청으로부터 통보되었다.

'증거불충분(혐의없음)'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주차 이후 나의 차 주변에 접근한 사람은 그 운전자가 유일함에도 손괴장면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라니, 이래서 당사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어 교체비용은 고스란히 나의 부담으로 된 것이다. 손괴죄가 인정되어야 민사상 손해배상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이 났으니 타이어값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CCTV의 한계와 사각지대는 나로 하여금 '생돈'을 지급하게 만들었고, 그 존재가치와 효용이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다.


# 대대적인 CCTV 증설과 현수막


나는 개인적으로 무혐의 처분에 대해 항고를 하지 않았으나, 입주자대표회의는 항고를 하였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CCTV의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CCTV 증설을 하였고, 현수막까지 걸려졌다.


'축', 00 아파트 전자감시 체계 구축!


거의 1년여의 기간동안 그 현수막을 보면서 속쓰린 지난 날을 생각하며 지냈다. 그 현수막은 내게는 메멘토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나의 사건으로 인해 다른 주민들이 불편을 겪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당 운전자는 나와 마주치는 날이면 나를 피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혹시나 가족들에게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었던 상황에서 나 혼자 억울한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행적이 누군가에게 노출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행적 중 일부는 노출되지 않는다. 노출되지 않는 행적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고, 떳떳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올바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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