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변호사님, 믿었던 놈한테 4,800만원을 뜯겼어요. 소송하고 싶은데요. 차용증, 현금 보관증 뭐 이런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보낸 내역은 있습니다. 이길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이런 사연을 듣는 일은 참으로 많다.
"그게 말이죠. 송금한 내역은 일정 액수의 돈이 누군가에게 지급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 돈이 갚은 돈이다. 그냥 준 돈이다 등등 구실을 붙이기 나름이지요. 따라서, 상대방이 돈을 빌린 사실을 부인할 경우, 우리가 돈을 빌려 주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소송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증거가 없거든요"
이길 수 있다고 해야 사건을 맡을 수 있겠지만, 실무상, 사실상의 현상에 대해 사실대로 의뢰인에게 말해준다. 의뢰인은 살짝 실망하는 기색과 아울러 변호사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상대방이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진 재산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다는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가령 승소하더라도 상대방이 가진 재산이 없으면 회수할 것이 없는데도, 소송하시겠습니까?"
"화가 나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기로 고소를 해서 콩밥이라도 먹이고 싶어요. 내가 이일로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제 뜻대로 변호사님은 해 주시면 됩니다. 돈 못 받아도 좋아요"
그렇다. 오랜 설득과 결실없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더이상 추가적인 만류는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면 의뢰인의 뜻대로 고소와 소제기를 준비한다. 사실 변호사입장에서는 의뢰인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든, 안되든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이다.
하지 못 했던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내가 받은 고통만큼 상대에게 안겨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복수(?)'를 하더라도 과연 카타르시스가 발생할까.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술의 비기를 평생 익혀서 원수를 만나 신공을 펼쳐 힘겹게 원수를 죽인 주인공은 허탈함과 목적을 상실한 나머지 느끼는 공허함이 대부분이다. 결코, 받은 고통에 대한 진통의 효과는 거의 없다.
용서해 주는 게 속편하다고 감히 말 할 수는 없다. 단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양보해 보려고 하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