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위 사진은 퍼온 이미지입니다. 출처 : 고원주 일러스트레이터]
현실에서는 놀기만 했던 배짱이에게 쉴 공간과 음식을 내어 줄 개미는 없다. 동화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몸담고 있는 일자리 또한 언제까지나 안정적인 소득과 그 자리보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또한,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형 인간을 두고 롤모델로 삼지 않을 뿐더러 생산적 소득없이 놀기만 하는 배짱이형 인간을 본받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현실은 개미처럼 일하되, 놀 줄도 알아야 하고, 배짱이처럼 놀되 최소한의 일처리도 해야 하는 그런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어쩌면 놀이처럼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지향점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놀이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과 놀이를 함께 제공하는 그런 일자리나 회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일을 통해 생계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고, 그 속에서 자아실현이 되기를 꿈꾼다.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배짱이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고, 그러한 행위를 지속할 때, 가장 부지런한 것이다. 일개미가 일을 하는 것 또한 본능에 충실한 것이고, 일을 할 때가 가장 부지런한 것이다.
돈을 처절하게 벌어야 하는 상황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돈을 위해 본능을 억제하고, 욕구를 삼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정 시간만큼만 일을 시키고, 적정한 시간을 놀리게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 사장의 경우에. 하지만, 직원의 경우,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하고, 놀으라고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놀아대면 긴 안목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다. 배짱이도 이제는 일을 해야 하고, 타고 나기를 일만 하도록 되어 있는 개미도 이제는 놀 줄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적정 수준에서나 버거운 수준에서나 본능과 이성,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진솔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