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워쇼스키 형제가 남매로, 그리고, 자매로 변화되기 전에 SF영화의 한 획을 그은 영화다. 이 영화를 각 시리즈별로 수십번도 넘게 보았다. 초반에는 영상의 독특함 때문에, 후에는 극중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의 심오함 때문에 케이블 채널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걸 목격하게 되면 멈출 수 없이 끝까지 보게 된다.
기본적인 틀은 기독교적 철학에서 이 영화는 전개된다. 미스터 앤더슨인 키아누 리브스는 '네오'라는 메시아의 존재로 등장한다. 인도에서는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수입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인간이 만든 AI가 인간을 대적적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인간들이 태양에너지에 의존하는 AI의 전원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권에 태양 차단막 같은 것을 쏘아 올리자 AI가 인간을 배양하면서 인간에게서 추출되는 전기적 에너지를 배터리로 만들어 버리고, 자연발생적 인간들까지 말살해 버리는 것에 투쟁하는 인간 VS 컴퓨터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사실, 매트릭스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되었든, 키아누 리브스는 메시아로 등장하고, 그를 사랑하는 여인인 트리니티는 '성부, 성자, 성신'을 뜻하는 이름에서 마리아 같은 존재로 그를 보좌한다. 모피어스는 메시아의 강림이전부터 메시아의 강림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모세'같은 존재이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모피어스가 네오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트리니티에게 하는 1편 중에 있는 대사이다.
그런데, 네오가 1차 각성을 이루고 난 이후의 2편에서는 '키메이커'(메인 컴퓨터로 침입하기 위한 루트를 아는 프로그램)를 찾는 과정에서 매로빈지언이라는 프랑스 프로그램을 만나자 그가 네오에게 "세상은 인과관계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너는 인과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키메이커를 내 줄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인과관계에서 '인'에 해당하는 이유를 알지 못 하는 삶은 자유를 찾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는 불교적 관점에서나 설법할 법한 말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것이 인과론의 결론이다.
매트릭스는 인간을 배터리로 활용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심어준 프로그램이다. 변호사, 의사, 목수 등 각 인간들에게 프로그램을 심어주고,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발생하는 전기적 에너지를 추출하기 위한 일종의 큰 틀의 발전기이다.
네오가 메인소스에 접근했지만 인간 VS 기계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모피어스의 믿음은 여기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모피어스가 하는 말이다. 네오의 존재가 예시에서 말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Something is differennt
2편에서 스퀴디와 폭탄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자 네오가 하는 말이다. 스스로도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설파했지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기계들을 매트릭스가 아닌 현실에서 무찌르면서 외마디로 외친 말이다. 2차 각성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적 삶을 그린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3편에서 네오는 결국 기계의 본진으로 간다. 그리고는 자신을 메인컴퓨터에 연결해서 바이러스(스미스)와 싸우다가 지는 척 하면서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침투해서 전멸시킨 뒤, 십자가 형상의 빛을 발한 뒤 죽음을 맞이한다. 메인컴퓨터는 "It's done"이라고 한다.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 이루었도다"라고 말했다고 번역되지만, 사실은 "다 지불하였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라틴어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한 것이다.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시 노예를 해방시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다 지불하였다"라고 예수님이 말했으나, 번역은 다 이루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성적으로 확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의 것에 의존한다. 이 영화는 희생이라는 가치가 가장 숭고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희생이라는 것이 결코 유쾌한 관념은 아니다.
다만, 20년 가까이 지난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현상을 접할 때 받아들이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틀려지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것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깊어질수록 감성이 메마를 수도 있다. 감정적인 측면에 치우칠수록 의심이 더해 갈수도 있는 문제이다.
어느 새벽에 해묵었지만, 재미가 있었던 영화를 접하면서 사물은 변함이 없음에도 달리 느끼는 우리네 감정이 세월의 변화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