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몇 차례의 살인사건을 수임해서 변호를 한 적이 있다. 살인사건의 대부분은 사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증거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하고, 피고인 역시 그 동기와 과정을 참작해 달라고 하소연할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피고인이 살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그런 사건은 많지 않다.
이미 피고인의 행위로 누군가의 생명의 불은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최대한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는 점을 피력해서 처벌이 최대한 가볍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이다.
피고인에게도 가족이 있다. 게다가 배우자와 자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관계에서 피고인은 평범한 가족의 일원이다. 하지만, 사건발생 당시 화를 참지 못 하거나 우발적으로 타인의 목숨을 앗아버린 경우가 많다. 물론, 누군가의 생명을 계획적으로 소멸시키기 위해 준비과정을 거쳐 실제 행위에 나아간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피고인들의 대부분이 우발적이고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 한데에서 비롯해 살해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격한 충동과 분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평범한 한 시민만이 있을 뿐이다.
살인사건의 법정 내 분위기와 법정 밖에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법정 내에서는 변호인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피고인이 유일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여러 사람이 접근해 온다.
변호인이 법정을 나서는 순간 피해자의 유족들이 먼저 다가온다. 여러 소리들이 들려 온다. "저런 xx를 변호한다고! 니가 변호사냐!' 등 더 험한 표현들도 들은 적이 있다. 그 다음으로 법정경위가 다가와 피해자의 유족들을 변호인에게 이격시킨다. 그러면, 유족이라는 바리케이트에서 벗어나 법원 계단을 통해 법원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변호인에게 다가오는 것은 의뢰인 즉, 피고인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변호인에게 참으로 친절하고 기가 죽어 있다. "판결이 어떻게 날 것 같아요?". 이 질문에 여러 심경이 함축되어 있다. 변호인으로서 그저 개인으로서 설명을 하고 나면 그제서야 타인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변호인을 따라 오는 것은, 나의 그림자와 '사람으로서의 나'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정한 피고인의 마지막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앞서 가는 나'를 통해 '뒤따르는 나'를 위로한다.
피해자로서 생명이 꺼져버린 이나 피고인으로서 삶이 꺼져버린 이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