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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왜 돌아오지 않았나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신데렐라에서 나오는 요정은 호박을 마차로, 생쥐를 말로, 큰쥐를 마부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드레스와 유리구두로 클럽의 여신으로 변신시킨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참석해 왕자와 단독댄스를 추면서도 계모와 언니들에게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 요정이 모습을, 얼굴을 성형시키지는 않았음에도 매일 같이 대면하는 가족들이 신데렐라를 전혀 알아채지 못 한다. 신데렐라의 의미가 재투성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재투성이와 먼지를 덮어쓰고 살았으니 계모와 언니들이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 한 것일까.


신데렐라가 유리구두 한쪽을 무도회장에 남겨 놓고 온 날은, 첫번째 무도회날이 아닌 세번째로 무도회에 출석한 날이라는 설도 있다. 신데렐라는 자정이 지나면 모든 마법이 풀려 다시 재투성이로 변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두번이나 무도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간관념이 없어서 세번째 무도회때 서두르느라 유리구두를 떨어뜨렸다는 것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 한다.


유리구두라고 설정된 것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털신, 가죽신, 비단신이었다는 설도 있다. 황금구두였다는 설도 있는데, 왕자가 신데렐라의 연락처를 얻지 못 해 애가 타던 끝에 신데렐라가 가는 길에 끈적한 물질을 깔아두어 신데렐라는 구두 한쪽이 달라붙어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두고 도망치듯 귀가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도 있다.


유리구두, 털가죽신, 비단신, 황금구두이든 신데렐라가 결정적인 날에 신발 한쪽을 왕자의 인식범위내에 남겨둔 것만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구두만은 자정이 넘었음에도 마법에서 풀리지 않고 그 형체를 유지해 탐문수색에 이용될 수 있었을까.


신데렐라가 구입한 실물일 수도 있고, 요정이 마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물을 선물로 주었을 수도 있지만, 마법의 산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니 자정이 넘었음에도 그 구두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왕자의 입장에 서서 탐문수색의 대상범위는 어떻게 정했을까. 신데렐라가 유부녀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리구두의 착용기회는 철저하게 싱글들을 대상으로 한다.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여성, 미혼, 젊은 여성이라는 조건에 맞아야 유리구두에 발을 맞춰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쳐도 여성의 평균 발사이즈라는 것이 있을텐데, 아무도 유리구두에 자신의 발을 맞추지 못 한다. 엄지발가락이 과도하게 큰 신데렐라의 언니는 발가락을 다 넣고 나니 남은 발의 부위가 구두 밖으로 보기좋게 남겨져서 탈락한다.


털가죽신이나 비단구두가 문제의 구두의 재질이 아니고, 유리나 황금이어야 하는 이유는 신축성 제로의 신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데렐라보다 발사이즈가 큰 언니들이 구두를 신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동화, 권선징악의 특성상 무조건 선하게 살아온 신데렐라가 행복해져야 하는 결론을 이끌기 위해서는 신데렐라만이 구두를 신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늘어나는 재질의 구두는 합당하지 않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은 이후에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탐문수색은 중지된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신데렐라가 나머지 한쪽을 제시함으로써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요정은 왕자를 홀려 신데렐라를 신부로 맞이하게 하지 않고, 유리구두를 선물하고 그 구두의 분실과 주인찾기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 끝에 신데렐라를 행복한 상태에 두는 선택을 하였을까.


아마도 요정의 마법이라는 것이 물체의 형상을 변경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변경할 수 없는 한계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발사이즈를 신데렐라가 가지고 있었거나 같은 발사이즈의 여성이 유리구두를 착용하지 못 하도록 구두에 마법을 걸어두었을 수도 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원하는 남성을 얻는 전략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정 전 귀가는 클럽 분위기가 한창일 때 '이제, 그만'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철저한 신분의 비밀유지는 상대로 하여금 궁금증과 신비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신데렐라가 요정을 만나 마법의 효과를 누리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주어진 마법효과가 아닌 것 중에서 왕자에게 남겨둘 수 있는 매개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몇 차례 무도회 참석을 하며서도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알려 주지 않으면서 자의든, 타의든 구두만이 회귀되지 않는 것이라는 깨달음 끝에 두쪽 다 남겨서는 신원확인이 안되니 한쪽만 남겨두는 센스를 발휘한 것은 아닐까.


신데렐라의 계모와 이복형제들이 못 생겨서 신데렐라가 간택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악행과 신데렐라에 대한 착취 때문에 선물을 받지 못 한 것이다. 신데렐라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성실하고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수행해 나간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리고, 욕심부리지 않고 요정과의 약속을 지킨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반드시 온다. 하지만, 기회를 살리는 것은 그 사람만의 기나긴 통찰과 지혜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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