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아들의 입학식을 지켜보면서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우선 드는 생각이 '언제 이렇게 커 버렸을까'이다. 품에서 잠들고, 보채고, 똥싸던 시절은 아련한 기억이 되어 버렸고, 알림장에 알림을 받아 적는 학생이 되어 버렸다.


간만에 초등학교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을 부여받은 날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아이가 다닐 학교 시설과 환경을 둘러보니 '왜 이렇게 책상이나 의자가 작은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나버렸다. 나의 모교에 가본 적이 없지만, 만약, 가본다면 이런 느낌이겠지라는 추측을 해 본다. 내 몸이 너무 커버린 탓에 아이들이 다녀야 하는 학교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 내 아이의 친구이면서 경쟁자들이다. 모든 부모가 아마도 동일한 생각을 품을 것이라는데 의심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그러면서 행복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그런 바램이 부모의 마음 한 켠에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본래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탓에 마음 속에 급한 것이 하나 생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아이에게 전달할 수는 없을까, 내가 겪은 실수와 고통을 우회하면서 나의 아이가 시간과 감정, 그리고, 정력을 낭비하지 않고 직선으로 인생길을 달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방법론적 대안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나쁜 친구들은 사귀지 않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친구들만 선별해서 사귈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저런 고민으로 입학식에 몰입하지 못 하는 나를 지켜보면서 나의 가족들은 나를 채근한다.


"이제 시작인데, 너무 성급한 것 아니야".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 하나는 닥달한다고 좋은 결과나 의도한 결과가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흐름대로, 그리고, 각자가 감내해야 하는 누구도 대체해 줄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은 각자의 몫으로, 부모는 그것을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것 뿐이라는 점이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는 진화론에 부합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복적인 삶의 패턴을 개별 인생이 겪으면서 그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시작과 끝, 입학과 졸업, 만남과 이별. 고통과 극복, 불운과 행운. 도전과 실패, 상실과 성취. 상반된 느낌을 주는 인생길의 여러 요소들을 직접 맛보고 직접 걸어가는 것은 순전히 아이의 몫이다.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너는 할 수 있어! 그리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너를 믿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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