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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19. 2023

기차는 어디로

도시스케치_헝가리 발라톤 호수

호텔은 조용했다. 가만히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밖으로 멀리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어젯밤 나는 이 약간 낡은 한적한 호텔에 들어와서 잠을 못이루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넓은 침대 위를 뒤척 거리다가 창문 밖이 밝아져 와서 눈을 뜬것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여전히 조용했다. 창가의 금빛 커튼은 십여년은 족히 되어보이게 낡아 축쳐져 있었다. 창틀 바닥에는 시멘트와 페인트의 이별로 떨어져 나온 페인트의 껍질 조각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체적으로 호텔 방이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낡았지만 깨끗하고 모든 가구와 소품들이 군더더기 없이 오랜 세월을 버텨낸 모습이었다. 커튼도 침대 시트도 오랜 세월 동안 많이 빨아서 섬유의 뻣뻣함은 사라지고 힘을 다 잃어버려서 조금만 힘을 가하면 주욱하고 결대로 찢어 질것 같았다. 많이 낡았지만 따뜻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방이었다. 나는 창가에 있는 녹색의 낡은 천으로 감싸진 쿠션이 다 죽은 소파의 팔걸이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 보았다.  

 

호수는 어둡고 푸르렀다. 그 주변은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들로 둘러 쌓여서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그림같다. 비가 올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었다. 호수 둘레에는 노란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길게 철길이 보였다. 철길을 따라 오른쪽 멀리 기차역이 보였다.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검은 점처럼 조금씩 움직이는게 보였다. 소리가 없으니 모든게 그림같았다. 꼬물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러 어디로 가려고 아침부터 기차역에 나와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당분간 길 위를 떠 돌아다닐 여행자이다. 가고자 정해진 목적지는 있어도 딱히 만날 사람은 없었다. 문득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누군가 만나고 싶어져서 그들이 부러웠다. 바람이 불었다. 나무를 흔들고 멀리 검푸른 호수의 표면도 흔들었다. 나는 뿌연 창을 통해서 가만히 계속 내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구름은 해를 가리고 밖은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스르륵 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왼쪽에서 검정색의 짧은 기차가 다가왔다.

단 두개의 동이 이어진 짧은 직사각형의 검정색 기차였다. 기차는 천천히 왼쪽에서 다가와 내 앞을 빠르게 지나 오른쪽으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느릿느릿 작은 역에 섰다. 잠시후 사람들이 꼬물거리면서 기차에서 내리고 탔다. 차츰 사람들이 사라지고 플랫폼이 텅비었다. 그리자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떠나간다는 것은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아쉬움은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고 모든것은 어디론가 향하고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떠나간 기차는 점점 멀어져갔다. 호수와 나무를 끼고 왼쪽으로 구부러진 철길 위의 기차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나는 멀리 기차가 떠나가고 남겨진 철길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내 눈에서 기차는 작은 점으로 변하고 노랗고 붉은 나무들 속으로 어느새 사라졌다. 꿈같은 풍경이었다. 이제 구름이 걷혔는지 멀리 호수의 표면이 햇볕에 반짝이며 빛났다. 단풍이 물든 나무들도 바람결에 따라 일렁이면서 반짝거렸다. 복도에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말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늦가을의 수채화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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