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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1. 2023

습하고 더운 거리를 헤매다

도시 스케치_뉴올리언스

내가 미국에서 가장 처음 여행한 도시는 뉴올리언스였다. 미국에 있는 수많은 유명한 도시를 제치고 왜 갑자기 그 도시가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도시보다 뉴올리언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나를 흥분시켰다. 재즈도 듣고 무엇이든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너무나 평범한 중부의 오대호 연안 도시라서 그런 기대를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내 나이가 이십 대 초반이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적절한 이유 같다. 이십 대 초반이란 나이가 얼마나 무모한 나이인지는 한참 세월이 지나고 나서 알았다. 어쨌거나 나는 첫 번째 나의 여행지로 뉴올리언스를 골랐고 여행을 떠났다. 미시시피 강 위에 연기를 뿜는 유람선이 떠 있는 평화로운 도시를 상상한 건 만화로 본 톰소여의 모험 때문이었다. 실제로 뉴올리언스를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지는 광란의 도시는 평생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때는 오대호 연안의 선선한 도시조차도 폭염에 시달리는 칠월초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내가 정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재즈 거리로 유명한 버번가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몹시 오래된 거리이고 호텔도 몹시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 그 오래된 느낌을 불편하다거나 지저분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내 관심을 끈 신기한 것은 호텔의 가운데가 천장이 뻥 뚫려있고 작은 정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이고 그 정원을 중정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 후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한 경험을 쌓은 뒤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정원에 있는 커다란 앵무새였다. 그 앵무새는 화려한 파란색과 오렌지색 털을 뽐내면서 몹시 시끄럽게 울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신비한 세상에 온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날 오후 해가 지기 전부터 유명하다는 버번가를 걸었다. 거리는 뜨거운 태양으로 달구어져서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막에 둘러 쌓여서 습하고 더운 공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더위를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땀을 흘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정작 내게 힘든 것은 때 묻은 거리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였다. 왜 이런 낡고 냄새나는 도시가 그렇게 유명한지 나는 그 매력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어둠이 내리자 재즈 바들이 움찔거리면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귀가 아플 정도로 재즈 연주를 크게 흘려보냈다. 지나기만 해도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재즈 소리가 넘쳤다. 나도 순식간에 거리를 헤매는 방관자에서 재즈 애호가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연주 소리를 찾아 바에 들어가서 술 한잔을 시키고 사람들 사이에 어디든 걸터앉아서 연주를 듣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밤새 거리에는 사람들의 물결이 줄을 이었다. 바에 들어가거나 거리의 사람들의 물결에 합류하거나 그 둘 중에 하나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재즈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다음날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의 어느 한적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바 주변에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고 나는 일행과 테이블에 앉았다. 식당에서도 어김없이 재즈 음악이 크게 울려 나왔고 사람들의 소리는 시끄러웠다. 그때 내 눈에 바에 혼자 앉아서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짧게 머리를 자르고 하얀 민소매를 입고 반바지를 입은 일본인 남자였다. 일본인인지 아닌지는 그냥 보면 아는데 그 남자가 조리를 신은 것도 내 판단 요소 중 하나였다. 그 남자는 우리 일행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조용히 맥주를 마시면서 고개를 들었다가 또 수첩에 무언가를 적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끄럽고 질서 없는 소음 속에서도 깊게 몰입한 눈이 반짝였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물결이 열기를 내면서 거리 전체에 뒤덮여진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다.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그렇게 새벽까지 수많은 인파 속에서 거리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경험을 그 후에는 다시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또 잊을 수 없는 건 바에 조용히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적던 남자의 눈빛이다. 열기와 열정은 모두 거기 재즈와 함께 뉴올리언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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