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메밀묵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아이에게 겨울 방학은 길었다. 집 앞에 스케이트 장에 가서 하루종일 혼자 스케이트를 타고 집에 오면 얼굴이 얼었다 녹아서 간지럽고 빨개졌다. 그렇게 스케이트 타고 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가끔은 백화점도 가고 삼촌집에도 놀러 가고 그래도 겨울 방학은 길고 길었다.
겨울방학하면 스케이트장과 함께 생각나는 것이 메밀묵이다. 밤처럼 깜깜한 저녁에 저녁밥을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멀리서 찹쌀떡과 메밀묵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추운 밤에 그렇게 외치고 다니는 장사는 그게 유일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찹쌀떡과 메밀묵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찹쌀떡이나 메밀묵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 소리를 들을 때 사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만약 그 소리가 아이스크림이나 호떡이었다면 내가 사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메밀묵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겨울이면 메밀묵을 많이 먹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메밀묵이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가끔씩 저녁에 퇴근하고 오실 때 커다란 대야에 회색 벽돌 같은 메밀묵을 한가득 담아 오셨다. 아버지의 누나 즉 나의 고모가 시골에서 만들어 주시는 걸 가져오는 거였다.
나는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실 때면 현관으로 뛰어나가 인사를 하고 손에 들린 걸 확인했다. 지금도 처음 메밀묵을 봤을 때의 강렬한 인상과 냄새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버지는 아주 기쁜 표정으로 내게 대야의 천을 벗겨서 보여주셨는데 그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빵대신 메밀묵이 들어있었다. 우선 메밀묵은 색깔이 깜짝 놀랄 정도로 음식 같지 않게 별로였다. 회색 비슷해서 벽돌 같아 보였다. 게다가 냄새도 이상했다. 우리 집 강아지에게서 나는 보리차 냄새보다 좀 더 촌스러운 냄새가 묵에서 났다.
하지만 메밀묵은 식탁에 오를 때는 약간은 먹음직스럽게 변신해 있었다. 얇게 썰은 김치와 김가루가 덮여있어서 회색빛 묵과 조화를 이루고 특유의 촌스러운 냄새도 들기름 냄새에 덮여서 조금밖에 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묵의 온도인데 메밀묵은 도토리묵과는 달리 따뜻하게 데쳐있어서 일단 추운 겨울에 어울렸다. 그렇다고 내가 메밀묵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하도 좋아하고 맛있게 드셔서 나도 먹었을 뿐이다. 들기름과 양념된 김치 맛에 먹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묵을 먹었지만 묵에 대해서 별로 맛을 못 느끼고 살았다. 도토리묵이나 청포묵무침을 집에서 가끔 먹었지만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지 못했다. 메밀묵보다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젓가락으로 집어도 계속 미끄러져서 한 번에 집어 먹기도 불편한 음식이었다.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나는 귀찮아서 묵을 먹기 꺼려했다.
십몇 년 후에 직장에 다니고 나서 가끔씩 가는 워크숍에서 어느 날 문득 술안주로 나오는 도토리묵을 먹다가 묵이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묵은 양념맛으로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토리묵도 나름 고소하고 쌉싸름한 고유의 감칠맛이 있었다.
어느 날 강원도 특정 지역을 놀러 가서 묵밥이라는 메뉴를 파는 데가 눈에 띄었다. 그때 내가 어릴 때 먹던 따뜻한 메밀묵이 생각났다. 그래서 메밀묵무침을 시켰더니 메밀묵을 도토리묵무침처럼 팔아서 추억의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귀하면 먹고 싶어 지는 건지 김치와 들기름을 넣고 살짝 데친 메밀묵이 먹고 싶은데 파는 데가 없었다. 마트에서 메밀묵을 사다가 어릴 때 먹던 것처럼 해 먹으려 해 봐도 메밀묵 자체가 특유의 촌스러운 냄새도 안 나고 푸석거리고 맛이 없었다.
나는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취미가 없다. 내가 어딘가를 갈 때 동기가 되는 것은 어떤 풍경 사진이거나 건축물정도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많이 나서 추운 겨울이 지루해지면 메밀묵 맛집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