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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Feb 17. 2024

주유와 세차

패턴인식_설 연휴 전후

나는 평소에 시내에서는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고 먼 곳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어딘가를 가면 헤어질 때 주차 때문에 차를 가져왔냐고 묻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차를 안 가져왔다고 하면 약간 놀란다. 나는 오히려 이동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고 주차가 힘든데 굳이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놀란다. 


지난주에 저녁 약속이 있어서 강남에서 강북을 갈 일이 생겼다. 전달해 줄 짐 때문에 부득이하게 차를 가져가야 했다. 차를 가지고 수도권이나 지방을 가는 게 아니라 강 건너 시내를 가는 것은 내가 평소 선호하는 일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네시반인데도 퇴근시간처럼 차가 엄청 막혔다. 명절 전 길은 항상 막히는데 그 생각을 했음에도 길은 참 많이 막혔다. 

문제는 이미 지난번에 차를 탈 때 주유경고등이 들어왔는데 주말이라 복잡해서 주유를 안 하고 그냥 온 게 문제였다. 약속 장소로 가면서 주유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차가 막히니까 주변을 둘러볼 생각 없이 어찌어찌 가다 보니 그냥 강북까지 넘어갔다. 약속 장소 건너편에 주유소가 있는 건 기억나서 일단 약속 장소에 가서 넣어야지 생각을 했다. 

동호대교를 건너서 장충동을 지날 즈음에 약속 장소까지 남은 거리와 내차의 연료양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거의 비슷했다. 설마 차가 서겠어하면서 가는데 종로에서 차가 막혀서 가지 않으니 연료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최근에 별로 긴장이나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연료가 급격히 줄어들고 주행가능 거리가 한 자릿수로 표시되는 걸 보고 있자니 종로 한복판에서 차가 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아무래도 주유소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유소를 네비에서 찾아서 찍고 가는 데 드디어 내게 남은 연료는 제로가 되었다. 가장 복잡한 세종문화회관 부근이었다. 코너를 돌아서 조금만 가면 주유소가 있었다. 다행히 차는 서지 않았고 하이브리드라서 전기엔진으로 조용히 주유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유소 앞에 도착해서 보니 어둡게 불이 꺼져있었다. 다시 스트레스가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자 어두운 사무실에서 직원이 뛰어나왔다. 그 직원이 나와 나에게 차를 세우는 자리를 알려주는데 최근 들어서 모르는 사람을 본 중에 가장 기뻤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위기에서 벗어나서 천천히 상황을 보니 왕궁옆이라 그런지 내가 평소에 주유를 하는 고속도로 셀프 주유소보다 최소 리터당 육백 원은 비쌌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내가 당장 필요한 것은 몇백 킬로 이상 갈 수 있다는 표시가 된 차를 모는 안정감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가득 넣어 달라고 했다. 나를 구해준 것 같은 주유소가 고마워서 몇만 원을 더 내더라도 가득 주유하고 싶었다. 비용은 비쌌지만 주유소도 그걸 아는지 카드와 영수증을 주면서 생수 두병을 같이 내밀었다. 나는 몇 분 전까지 복잡한 도로에서 차가 설 것 같아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시달리다가 벗어났기 때문에 생수를 두통이나 챙겨주는 것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날 밤 차를 탈 때 달빛을 받아서 차 위에 뿌옇게 낀 먼지가  눈에 거슬렸다. 겨울 내내 세차장에 가야지 하면서 너무 추워서 몇 번 미뤘는데 이제는 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겨울철이 아니면 사람 없는 시간에 셀프 세차장에 가서 차를 닦는 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자주 물세차만 해주는데도 사람들이 내 차를 타면 새 차냐고 항상 묻는데 특히 차 안이 지저분한 걸 좋아하지 않을 뿐 극성스럽게 도구를 갖고 닦지는 않는다.  


연휴 다음날 오후에 시간이 났다. 세차장에 갈까 영화관에 갈까를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차를 몰고 나왔다. 연휴 다음 날이라서 그런지 길은 평소보다 막혔다. 연휴에 돌아다니다가 지친 사람들이 연휴 다음날은 휴가 내고 집에서 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연휴직후에는 세차장에 사람이 많다. 연휴 때 여행 다녀와서 더러워진 차를 세차하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차장에는 예상대로 차가 많았다. 그렇다고 차례를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일 오후 시간 치고는 계속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나는 너무 오랜만에 오는 세차장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일단 차를 세차 구역에 넣고 동전을 바꾸려고 나왔다. 내가 이 세차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귀찮게 카드를 사서 다시 돈을 충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본 세차비도 2천 원이라 물세차만 하는 나로서는 2천 원이면 세차가 해결되었다. 나는 잊지 않고 가져온 오천 원짜리 현금을 동전 교환기에 넣고 5백 원 동전을 바꿨다. 돈의 가치가 점점 낮아져서 그런지 5백 원짜리가 백 원짜리 만하게 작아 보였다.  

기계에 동전을 네 개 넣고 고압 세척기 버튼을 누르니 벌써 호스에서 물이 세게 차면서 소리가 났다. 세척기를 잡아서 누르니 물이 시원하게 분사된다. 차 위에 있던 먼지를 모두 날리고 싶어서 부지런히 구석구석에 물을 쏘면서 차를 두 바퀴 돌자 물은 멈춘다. 오랜만에 왔는데 물 세차만 하기에는 허전했다. 그러나 거품솔이 필요할 정도로 때가 낀 것은 아니어서 세워져 있는 거품솔에 묻어있는 거품으로 대충 차를 닦았다. 다시 이천 원을 기계에 넣고 고압 세차 버튼을 눌러서 물로 거품을 씻어냈다. 보통 때는 물로 한 번만 씻어내는데 오늘은 겨울 때를 벗긴다고 일부러 두 번 씻어냈다. 왠지 뿌듯했다.

트렁크에 있는 차에 필요한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 놓는 통을 열어서 파란색 극세사 걸레 두 개를 꺼냈다. 차의 겉면에 있는 물을 닦기 시작했다. 두 번 정도 빨아서 닦으니 차의 외부와 내부를 다 닦았다. 금방 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새로 빤 걸레는 트렁크 뒤의 상자 위에 넓게 펴 놓고 차에 탔다. 금방 마르지는 않아도 내일은 분명히 바싹 말라 있을 거였다. 느긋하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들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퇴근시간인데 길이 안 막혔다. 평소에는 오후 네시만 돼도 막히는데 길은 참 여유로웠다. 


예상보다 일찍 집에 와서 주차를 하는데 차를 뺄 때 내 옆에 있던 차가 뒷문이 살짝 열린 채 아직도 있다. 아까는 뒷문이 살짝 열려 있길래 사람이 타고 있는 줄 알았다. 뒷문을 열어 놓은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게 수상해서 그 옆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나는 반대편에 주차를 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무슨 이유에서 차의 뒷문을 십 센티쯤 열어 놓고 주차를 하고 갔는지 궁금했다. 

옆으로 지나가면서 슬쩍 보았다. 유리창이 하도 까매서 안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주차장에서 보이던 차는 아니었다. 왜 차를 그렇게 주차했을까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도난을 당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차들은 다 멀쩡했다. 다음날 가보니 그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 주인이 차를 그렇게 하고 다니는 차 같았다. 문 열고 주차하고 다니는 차도 있으니 앞으로는 궁금해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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