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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Feb 06. 2024

거리에서 마주친 동반자들

산책일기_2월 어느 날

오후에 산책을 하는데 품종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점박이 개와 어깨가 굽고 키가 많이 작은 노인이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털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개는 리트리버 만한 크기의 브라운색 털과 흰색의 긴 털이 섞여 있었다. 덩치는 컸지만 개가 그렇게 빨리 걷지는 못했다. 분명히 큰 개인데 뒤에서 걷는 것을 지켜보니 힘이 없어 보였다. 몸에 난 털이 촘촘하지도 않고 듬성듬성 빠져있고 살이 축 늘어진 게 노인만큼 나이가 든 개처럼 보였다. 개는 속도도 내지 않고 네발이 어설프게 엇박자로 엉거주춤하게 걸었다. 옆에서 걷고 있는 키 작은 노인은 그래도 빨리 걸었다. 


개는 주인의 오른쪽에서 걷다가 왼쪽의 공원 철제 난간 울타리 쪽으로 가서 냄새를 맡곤 했다. 그 울타리 안에는 소나무들이 많아서 바닥에는 흙과 낙엽이 쌓여있다. 나도 거기서 나오는 습기를 머금은 촉촉한 흙냄새를 좋아한다. 여름에는 풀들이 자라 있어 풀냄새가 나고 겨울에 흙냄새가 낙엽냄새와 섞여서 나서 좋다. 노인은 개가 공원의 울타리 난간 벽 쪽으로 가서 냄새를 맡을때 마다 개를 계속 자신의 오른쪽으로 다시 보냈다. 아마도 개가 냄새를 맡느라고 자기의 걸음을 방해하는 게 싫은 것 같았다.


나는 평소의 속도라면 그 노인과 개를 앞질러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개의 목줄이 목의 아래에서 앞다리 사이로 나와서 노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개가 걸을 때마다 앞발 사이에 목줄이 걸리적거렸다. 나는 그걸 목 위로 돌려서 잡으라고 해주고 싶었다. 내가 답답하고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면서 걸었다. 무엇보다 옆에서 걷고 있는 노인은 나름 빨리 걸으면서 누군가 이야기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상당히 날씨가 차가웠다. 마스크 안으로 내 입김이 물방울이 되어서 맺히고 있었다. 귀마개를 해서 다행히도 귀는 시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낮의 공기치고는 볼이 살짝 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날이 차가웠다. 한참을 걷다가 노인이 멈추더니 공원 울타리 난간 벽 쪽에 서서 맨손으로 코를 풀어서 풀숲과 난간 사이에 대고 털었다. 개가 가만히 서서 그걸 지켜본다. 개는 서둘러 먼저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여유가 느껴진다. 노인이 콧물을 다 털고 다시 빨리 걷기 시작하자 개도 다시 걷는다. 그들은 공원 울타리가 왼쪽으로 어어져 도는 갈림길에서 공원 울타리를 따라 왼쪽 언덕길로 갔다. 나는 오른쪽의 큰길 쪽으로 왔다.

  

그 며칠 후에 토요일 오전 산책길에서 뚱뚱한 비숑과 여자 주인을 봤다. 꽤 덩치가 있는 비숑이 쿵쾅거리면서 뛰면 여자 주인은 줄을 잡고 끌려가듯이 같이 달렸다. 옆으로 넓이가 상당한 비숑이어서 내 앞에서 일 미터쯤 있었을 때 몸집이 흔들릴 때마다 나에게도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뚱숑은 뛰다가 섰다가를 반복했다. 섰을 때는 길바닥의 냄새를 맡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달리기를 시작하곤 했다. 이십 대쯤으로 보이는 여자 주인이 뛰어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마치 주인을 운동시키러 나온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한참 앞질러 뛰다가 섰다가를 반복하다가 길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잠시 후 내가 모퉁이를 돌자 뚱숑이 공원의 철제 난간 옆 길 한가운데에 앉아서 똥 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 주인은 그 뚱숑을 마주 보면서 줄을 잡고 기다렸다. 여자 주인은 길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자기 개 때문에 창피한지 고개를 숙이고 줄을 잡고 길 가장자리로 뚱숑을 조금이라도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지나쳤다. 귀여운 천방지축 뚱숑이 똥 누는 것을 구경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여자 주인이 더 창피해할 것 같아 그냥 걸었다.


산책을 하는 개와 동반자들을 관찰하다 보면 개에게서나 주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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