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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Feb 28. 2024

가장 살고 싶은 나라

소설 같은 현실

해가 내리쬐기 시작하기 전 아침 빌딩 숲 사이 공기는 쌀쌀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도시 안에서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어야 한다. 멈추면 나는 방해물이 된다. 특히 출근 시간 전에는 더 그렇다. 나는 내가 잘 아는 길도 아닌데 잘 아는 길처럼 빨리 걷는다. 걷다 보면 또 거기서 거기고 찾으려 하는 곳은 찾게 마련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걸었다. 춥기도 하고 거리에 볼 것도 없었다.


그때 내 앞에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할머니와 커다란 개가 보였다. 푸들 같은 곱실거리는 털인데 스탠더드 푸들은 아니다. 머즐도 짧고 다리도 너무 짧다.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종이 없다. 그냥 태생이 강호동급 푸들인 것 같다. 강아지는 얼굴 표정도 그렇고 온몸으로 잔뜩 뿔이 나있었다.


나는 유심히 강아지와 할머니를 보며 걸음을 늦춰서 따라 걷는다. 강아지는 걷기 싫은지 몇 발자국마다 서있는다. 할머니는 줄을 당기고 강아지는 또 길을 걷는다. 서두를 건 하나도 없는데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할머니를 올려다보고 입을 꾹 다물고 마지못해 다시 걸어준다. 할머니 힘으로는 강아지를 절대 끌 수 없는걸 강아지가 알고 있는 눈빛이다.


그래도 거의 세 블록 이상은 같이 걸었다. 마침내 움직이기 싫어하는 푸들은 꿈적을 하지 않고 할머니는 줄을 잡고 서 있다. 나는 여기서 강아지와 할머니와 헤어져야 한다는 걸 강아지 얼굴을 보고 알았다. 커다란 푸들을 만져주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몹시 화가 나서 오늘 하루 종일 이 자리에 서있을지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앞에서 전화를 걸며 바쁘게 오던 사람이 나와 같은 느낌을 강아지 눈빛에서 받았나 보다.


스페인에서 여러 종류의 귀여운 관리된 개들을 봤는데 다리에 힘주고 버티는 강아지를 처음이었다. 나에게 마드리드는 화난 빅푸들로 기억될 것 같다.


스페인은 관리된 여러 종류의 강아지들이 많다. 거리 벤치에 앉아서 강아지 구경하는 재미가 많다. 강아지들이 산책하기 좋게 공원도 많다. 게다가 주인들이 식사나 털 손질 관리에 모두 신경을 쓰는지 강아지들 모질도 윤이 나고 깨끗하다. 강아지들 표정이나 몸짓이 자유롭고 밝았다. 주인과 줄에 묶여서 걷거나 뛰지만 자유가 억압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만약 강아지들이 나름대로 미디어가 발달하고 소식을 전달할 체계가 있다면 스페인은 강아지들이 가장 살고 싶은 나라 투표 1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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