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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21. 2023

할아버지의 동반자

도시 스케치_거제도

섬은 바람이 많이 분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섬이든 그렇다. 거제도도 그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람이 잔잔할 때가 없었다. 바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바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바람의 언덕에 갔다. 오래전 이곳에 와서 배를 타고 섬 구경을 간 기억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때보다 뭔가 발전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주차를 하고 나오는데 주차요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어눌한 발음으로 주차비 3천 원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나는 3천 원을 주고 젊은이들이 사라진 서울 이외의 한 도시에 와있음을 다시 상기했다. 바람의 언덕보다는 그 밑에 데크로 된 바다산책로가 좋았다. 오래전에 왔을 때와 달라진 점은 외국인 주차요원과 데크길 정도였다.


바람의 언덕을 돌고 바람과 바다를 피해서 거제도 시내의 시장을 갔다. 시내라 하기에는 좀 작지만 어쨌든 바람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도 좋았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장이었다. 나는 그저 어슬렁 거리며 시장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사면 그만이었다. 


주차장에서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자판에 채소를 놓고 파는 아주머니들이 길 양쪽으로 죽 있었다. 보이는 것은 채소들인데 시장 안을 가득 매운 냄새는 생선비린내와 젓갈 비린내였다. 바닥에 흥건하게 물기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냉동 창고 같은 커다란 창고가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았다.


시장으로 들어가니 밖은 태양이 뜨거워서 돌아다니기 불편했는데 시장은 지붕으로 덮여있어서 편안했다. 상점마다 대낮인데도 불빛이 빛나고 있어서 시간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가장 첫 번째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떡집도 지나고 족발집도 지나고 두부집도 지났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저 두리번거리며 걷기에 딱 좋았다.   


중간쯤 길을 지날 때 리어카가 길의 한편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그때 리어카 밑에 있던 커다란 강아지가 앞으로 걸어갈 길 쪽으로 쑥 나왔다. 강아지는 크기가 조금 커 보였다. 살짝 눈치를 보면서 저기를 어떻게 지나갈까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때 할아버지 한 분이 강아지옆으로 와서 따라오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아마도 리어카의 주인 할아버지인 것 같았다. 그러자 강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가려다가 리어카 밑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리어카옆으로 지나면서 보니 리어카에는 빈 박스가 쌓여있었다. 박스 모으는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세워놓고 박스를 가지러 가는 중에 같이 온 강아지가 리어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옆으로 지나칠 때 강아지는 리어카 밑으로 들어가서 얌전히 앉아있었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리어카 밑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보면서 지나갔다. 뒤쪽에서 어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아지가 참 착하네."  


강아지를 지나쳐서 한참 시장 골목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아까 지나왔던 길에 다시 들어왔다. 강아지를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운이 좋게도 여전히 강아지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동반자의 눈을 보았다. 두리번거리지 않는 편안한 기다림의 눈빛이었다. 삶의 많은 경험을 다 거쳐 온 사람의 눈빛 같기도 했다.  


시장에서 살게 없었다. 갑자기 토마토가 먹고 싶었는데 소고기보다 비싼 토마토 가격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 시장에서 나와서 다시 바람 부는 바다를 한참 헤매고 돌아다녔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여도 걷기만 하면 바람이 어디선가 몰려와서 엄청나게 불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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