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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14. 2023

조용히 울고 있는 기린

소설 같은 현실_해바라기

큰 길이 두 개가 만나는 지점에 오래된 자동차 정비소와 주유소가 함께 있었다. 그쪽으로 지나가는 일도 많이 없었지만 지나가면서도 그 주유소와 주변의 다른 건물들을 유심히 본 적도 없다. 더구나 그 주유소는 간판도 작고 사람도 없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영업하는 주유소 같지 않았다. 


내가 그 주유소를 기억하는 건 내 차가 기름이 한 방울도 없어서 멈춰 서기 직전에 딱 한번 들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차에 기름이 바닥이 나면 차의 핸들이 점점 무거워지고 자전거만큼 속도도 나지 않다가 마침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그걸 몸소 체험했기에 그 주유소에 대한 기억이 확실히 남았다. 그날 운명처럼 그 주유소가 눈앞에 나타나 거북이처럼 늘어지던 차가 간신히 주유기 앞에 들어서 멈췄다. 


그리고 그 후에 그 주유소를 몇 번 더 간 적이 있다. 내 차를 갖고 간 것은 아니다. 학교 벤을 타고 식물을 관찰하러 가던 여름 방학 때 조교는 항상 출발하기 전에 그 주유소에 가서 주유를 했다. 학교와 어떤 관계가 맺어져 있는지 주유를 하고 서류를 쓰면 되었다. 나는 그 주유소만큼 그 거리를 희미하게 기억했다. 핫 플레이스도 없는 그저 동네와 시내의 중간 부근 개성 없는 거리였다.

 

그 주유소가 있는 곳으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즉 시내로 가는 반대 방향으로 그저 그런 동네가 있었다. 길 옆으로 커다란 떡갈나무와 잔디가 있고 비슷비슷한 목조 집들이 늘어서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중서부의 중산층 동네다. 그 동네를 지나 북쪽으로 쭉 올라오면 학교가 있었다. 주유소를 시작으로 걸어 올라오면 처음에는 살짝 언덕이고 그다음에는 평지 그리고 다시 살짝 언덕 위에 학교가 있었다. 


나는 그 동네를 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하고 잘 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내 기억은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듯이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저장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은 대부분 하나의 실마리가 반짝하고 나타나야 가능했다. 그러면 그때 있었던 커다란 부분을 가져와서 차례차례 여러 가지가 중구난방으로 되살아 나는 방식이었다. 위치나 건물에 대한 기억도 그랬다. 하지만 내 모든 기억은 절대  정확하지 않았다. 내가 믿으려는데로 왜곡되는 일도 아주 많았다.   


그때 나에게 여름은 모든 사람이 떠나가고 남은 사람에게는 참 쓸쓸한 계절이었다. 늦여름과 가을 사이쯤이었는데도 그날의 태양은 참 뜨거웠다. 골목이 끝나고 두 개의 골목이 합쳐져 주유소가 있는 큰길과 만나지는 곳이었다. 나는 거기 삼각주 평야지대처럼 생긴 공간에 집 한 채를 보았다.  


그 집의 페인트 칠도 되어있지 않은 회색빛 허름한 나무 펜스 뒤쪽 작은 마당에 한가득 해바라기가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이 안 보일 정도로 굉장히 커다랗게 여러 개가 자라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해바라기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보는 순간 잔잔한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혼란스러운 기분은 해바라기가 있는 그 집 때문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해바라기는 방긋 웃는 노란 해바라기였다. 하지만 실제 눈앞에 펼쳐진 살아 있는 해바라기는 짙은 갈색으로 무척 어둡고 거인처럼 압도적으로 컸다. 그리고 왠지 식물보다 동물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내게 다가온 것은 고개를 떨구고 힘들어 지쳐있는 갈색의 얼굴을 한 커다란 기린이었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여름의 막바지였다. 거리는 조용했고 나만 부스럭거리면서 걸어가다가 기린 같은 해바라기를 보고 흠칫 놀라고 있었다. 


그 후 나는 한참을 기린 느낌이 나는 해바라기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수년이 흘러 런던의 내쇼널 갤러리 복잡한 인파 속에서 아주 작은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을 봤다. 작은 그림이었다. 보고 또 봐도 해바라기가 너무 작은 그림 안에 갇혀있었다. 견학 온 아이들이 그림 밑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물론 고흐의 그림 안에 해바라기도 갈색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내심 내가 실제로 본 해바라기에 대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고 안심했다. 해바라기의 인상은 고흐의 그림에서도 그랬다. 더 살고 싶은 열망 갖고 있지만 시간이 다 흘러 이제 쓰러져야 할 때가 온 것을 알아챈 체념의 얼굴이었다.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짐승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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