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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12. 2023

어느 오후 던 브라더스 커피집 풍경

도시스케치_미네소타 애플밸리

검은 칠판에 쓰인 메뉴는 단순했다. 나는 제일 윗줄에 쓰인 에스프레소 메뉴를 건너뛰고 그다음에 적힌 브루드 커피를 시켰다. 사이즈는 미디엄으로 했다. 곱슬머리의 백인 여자 주인은 다크 로스트인지 라이트 로스트 인지 묻는다. 메뉴에는 그런 선택이 없어서 잠시 당황했다. 그냥 나는 연한 것으로 주문한다. 2.56달러라고 말하기에 주머니에 동전을 꺼내 보니 56센트는 없다. 5달러 지폐와 6센트를 주었다. 그녀는 손에 내가 준 지폐와 동전을 들고 얼마를 내어 줄지 조금 당황한다.


나는 그녀에게 나에게 2.50을 주면 된다고 말해준다. 그제야 그녀는 금전 등록기를 열고 잔돈을 내어 준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서서 커피를 준비한다. 그녀가 준 미디엄 사이즈 커피는 내게 좀 크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향이 훨씬 좋다. 나는 커다란 미디엄 사이즈의 커피잔을 들고 어디에 앉을지 카페를 한번 둘러본다. 카페 안에는 젊은 연인 한쌍, 오십쯤 되는 중년 아저씨, 양복을 입고 노트북을 보는 중년 신사, 그리고 시간이 많은 나 밖에 없다. 나는 테이블과 나무 의자가 있는 왼쪽 공간보다는 다소 작지만 소파가 있는 오른쪽 편으로 향했다. 창가 옆에 창을 등지고 앉아서 카페 안을 한눈에 바라본다. 


오른쪽에는 창가를 바라보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연인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옆, 즉 내 정면에는 이인용 테이블이 붙여놓고 양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가 카페 카운터 쪽으로 향해 앉아서 노트북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내 바로 옆 창가 코너에는 중년의 아저씨가 창가를 보고 있다. 

노트북 자판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 음악은 카운터 쪽에서 흐른다. 정면에서 왼쪽은 카운터가 보인다. 카운터 옆으로 우체통과 같이 붉고 화사한 커피 로스팅 기계와 커피 원두가 들어 있은 포대 자루들이 쌓여 있다. 정면의 벽에는 가장 위쪽에 길고 큰 가죽 벨트가 걸려있다. 그 밑으로 다양한 크기의 액자가 걸려있다. 액자에는 트럼펫, 거리, 건물, 하늘 등의 사진이 있다. 커피를 한 모금 살짝 마시면서 사진을 천천히 본다. 


다리의 난간 사이로 맞은편 건물 정면을 찍은 안개 낀 날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은 춥고 외롭다. 이 사진과 카페 주인 여자는 북유럽 어느 도시를 연상케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앞에 앉아 있던 연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좀 더 공간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다. 

연인들이 나가자 사진이 걸린 벽의 밑 쪽에 앉은 양복을 입은 신사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애플 노트북을 켜 놓고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리고 책을 보고 있다. 어떤 책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너무 진지하게 책을 보고 있어서 중요한 시험공부를 하러 온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제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진이 걸려 있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사진들이 걸려 있는 액자들 사이로 하얀 메모가 하나가 붙어 있다. 사진 작품을 사기 원하면 연락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다. 문득 사진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사진의 주제가 인물 위주의 사진들이었다면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액자 속에는 길과 건물 즉 사물 위주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나처럼 사물의 구조나 공간에서 얻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노트북의 신사가 나갔다. 


이제 카페 안에는 나와 내 옆에 처음부터 앉아 있던 중년 남자 그리고 카운터 안쪽에 중년의 주인 여자와 비니를 쓴 좀 더 덩치가 크고 머리색이 진한 갈색의 여 종업원이 있다. 그 둘은 무언가를 이야기하지만 내 귀에까지 들리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벽에 다가가서 사진을 자세히 본다. 처음 대충 벽을 훑어봤을 때 내 눈에 확 들어왔던 안개 낀 날의 다리와 건물 사진을 본다. 자세히 보니 다리의 난간 사이로 노란 낙엽 하나가 달린 나뭇가지가 올라와 있다. 


밖은 비가 올 것 같이 우중충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지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 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나의 오후는 사진 한 장으로도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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