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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11. 2023

삶은 향으로 기억해

입맛의 성장_게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그때가 5월일 수도 있고 6월일 수도 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된다. 그때 라일락 나무에 하얀 꽃들이 핀다. 그리고 반질 반질한 라일락 나무 잎들이 무성 해진다. 밤에 언뜻 보면 라일락 나무의 꽃들이 웃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들이 좋아 나도 웃는다. 


그때는 사방에 꽃향기가 나고 밤에도 바람이 차갑지 않다. 누구든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다. 나는 그런 봄밤의 하늘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은 없다. 단지 검은 하늘에 아득히 보이는 별을 보면 어떤 감정이 생긴다. 그리움이나 설렘 같기도 하고 우주를 떠도는 슬픔 같기도 하다. 


봄밤의 바람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는 내 강아지의 따스한 콧김이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기분 좋게 세상을 느끼고 싶은 킁킁 거림이다. 흥분이 곁들여진 내면의 바람이기도 하다. 나는 숨을 한 껏 들이마시고 머리 결을 흔드는 바람을 느낀다. 거기에 꽃향기나 잔디와 나무의 향기가 실려온다. 흙냄새도 온다. 겨울에 맡았던 땅의 냄새가 아니라 땅 위의 풀과 꽃의 냄새다. 나도 돌아다니고 싶어 지게 만드는 냄새다.


그날도 그런 어느 봄날의 휴일이었다. 내게 휴일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은 집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었다. 평일에는 아침마다 모두 떠난 집에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일하는 아주머니와 같이 있었다. 하지만 휴일에는 그 사정이 조금 달랐다. 온 가족이 모두 집에 같이 있었다.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휴일이었다. 

날이 조금은 더워지려고 태양이 뜨겁고 나무 그늘이 좋은 그런 날이었다. 등나무와 포도나무 덩굴이 그늘을 만들어 주던 마당 아래에 상 위에 앉아 있었다. 집안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무슨 음식인지 모르지만 모두 마당에 나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나는 기다림이 지루해서 마당의 꽃들과 잔디를 보면서 돌아다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가 커다란 통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고 할머니는 위험하다고 가까이 못 오게 손을 뻗어 나를 막았다. 할머니가 마당에서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 옆에서 그 커다란 통을 열자 뜨거운 김이 솟아 올라왔다.


잠시 후 커다란 꽃게가 상위에 놓였다. 껍질을 반으로 가르고 몸통에 붙어있던 다리도 가위로 갈랐다. 우지직거리면서 커다란 꽃게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하얀 살이 나왔다. 어머니는 내 옆에서 하얀 살 달려 있는 다리를 내게 주셨다. 따뜻한 김과 함께 비리면서도 고소한 향이 났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짭짤하면서도 비린 물이 나올 때까지 그 다리 살을 먹고 쪽쪽 빨았다. 

간혹 꽃게의 투박한 앞발은 어머니가 가위로 쪼개서 젓가락을 넣어 살을 발라 주셨다. 몸통과 다리에 있던 살보다 더 쫀득한 살이었다. 몸통 안의 주황색 알이나 녹색의 내장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먹는 걸 보았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가끔 주황색 알을 어머니가 주시곤 했는데 나에게는 게 향이 많이 나지 않아서 별로 맛있는걸 못 느꼈다. 그 봄날 저녁의 찐 게 냄새는 내 손가락과 입안에 오랫동안 남았다.    


찐 게를 먹던 나는 집에서 게장은 거의 먹지 않았다. 간장 게장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나는 간장 맛에 비린내만 나는 게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 때 갈빗집에 가서 처음으로 빨간 게장을 먹었다. 맵지만 게의 살이 익혔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캘리포니아에 놀러 가서 래돈도비치에서 커다란 게를 사 먹었다. 나무망치로 껍데기를 깨서 살을 먹는 맛이 좋았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 먹던 꽃게의 향과는 달랐다. 고소한 향이 없고 바다내음이 더 진했다. 싱가포르에 출장을 가서는 칠리크랩과 페퍼크랩을 사 먹었다. 게에 과도한 양념을 할 이유가 있을까 의문만 들었다. 


지금도 나무에 꽃이 피고 선선한 바람이 상쾌해지는 봄과 여름 사이가 되면 한 번씩은 꽃게찜 생각이 난다. 꽃게도 사 먹고 대게도 사 먹고 홍게도 사 먹는다. 사람들은 간장 게장도 사 먹고 칠리크랩도 사 먹지만 아직도 내 입맛에는 아무 양념 없이 순수하게 찐 게가 가장 향기롭고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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