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추어탕과 고추장떡
맛보다는 재료와 요리의 준비 과정이 그리운 음식들이 있다. 나에게는 심심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무심히 보곤 하던 요리가 있었다.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무척 보고 싶은 요리들이다.
어느 봄날 저녁 나는 혼자 놀다가 지쳐서 할머니 옆에 붙어서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마당 뒤쪽에 있는 장독대에 가서 고추장을 떠 왔다. 그리고 고추장을 밀가루 반죽에 넣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할머니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고추장떡이라고 알려주셨다. 고추장이 들어간 붉은 밀가루 반죽 안에는 고추가 얇게 썰어져 들어간 것 밖에는 없었다. 할머니는 그걸 한입 크기로 조그맣게 부치셨다. 기름에서 매콤한 냄새가 났다. 다른 부침개에서 나던 고소한 냄새가 아니라 목이 메워서 기침이 나는 냄새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고추장떡이란 걸 먹어 보았는데 맛은 너무 맵고 짰다.
봄에는 할머니가 추어탕을 하기 위해서 미꾸라지를 자주 사 오시곤 했다. 팽팽한 비닐 안에 반쯤 차 있는 미꾸라지가 무척 활발하게 요동을 쳤다. 나는 그 요동치는 비닐을 들고 들여다 보기를 좋아했다. 미꾸라지는 크기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다. 할머니는 미꾸라지가 든 비닐을 커다란 양푼에 놓고 찢어서 미꾸라지들이 튀어나오게 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 미꾸라지들은 굉장히 큰 소리를 내면서 양푼 안에서 꿈틀 거리며 튀어 올랐다. 그때 할머니는 빠르게 굵은소금을 미꾸라지 위에 뿌리고 큰 쟁반으로 양푼을 덮었다.
그러면 양푼 안에 소금과 함께 갇힌 미꾸라지들은 큰 소리를 내면서 꿈틀거렸다. 위에 덮인 쟁반이 들썩 거릴 정도였다. 미꾸라지들이 양푼 안에서 소금 때문에 따가워서 꿈틀거리는 거라고 했다. 소리가 요란했는데 마치 장맛비가 오는 소리 같았다. 한참을 지나 미꾸라지들이 후드득 거리며 내는 소리가 잠잠해지면 할머니는 미꾸라지를 씻어서 솥에 삶았다.
저녁 먹을 시간쯤 부엌에 가보면 미꾸라지들은 어느새 살이 발라져서 솥 안에 추어탕이 끓고 있었다. 나는 추어탕을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생선을 싫어하기도 했고 생선살이 떠다니는 모습에 입맛이 떨어져서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추어탕을 좋아했던 아버지 때문에 할머니가 미꾸라지를 사 올 때가 많았는데 매번 미꾸라지를 준비하는 걸 보는 것은 좋아했다. 나의 비슷한 일상에서 작은 이벤트 같았다.
아주 가끔 해가 길어지는 봄날에 문득 고추장떡이 생각나거나 추어탕이 생각날 때가 있다. 먹고 싶기보다는 그때의 햇살이나 공기가 어렴풋이 지금 같았지 하고 떠오른다. 그리고 할머니 어깨너머로 고추장떡이 익어가던 걸 보거나 미꾸라지가 후드득거리며 양푼에서 소리 내던 걸 보는 내가 기억난다. 그때 호기심은 많은 눈빛으로 모든 걸 보던 나는 이제 없다. 보고 싶은 요리와 함께 기억 속에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