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곰보빵
나는 어릴 때 아버지든 어머니든 현관에 누군가 어른들이 들어설 때면 무조건 달려 나갔다. 내 목적은 인사하는 것보다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보는 거였다. 아버지는 주로 제과점에 들러서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사 오시고 어머니는 그때그때 어디에 외출하고 왔는지에 따라서 사 오는 게 달랐다. 물론 빈손으로 올 때가 많았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손에 봉투하나 들려있지 않아서 실망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때 어머니의 가방이나 할머니의 가방에서 나오는 찌그러진 빵이나 떡이다. 팔빵이나 백설기여도 좋지만 그게 곰보빵이었을 때는 기분이 참 좋았다. 나를 지루하게 집에 두고 교회에 갔다 왔어도 다 용서가 됐다.
곰보빵은 볼품이 없다. 노르스름하고 울퉁불퉁한 동그란 빵이다. 그리고 노르스름한 부분은 잘 떨어져서 그 부분이 떨어진 빵은 살짝 퍽퍽한 식빵 같은 맛이다. 하지만 노르스름한 부분과 퍽퍽한 식빵 같은 아래 부분은 아주 잘 어울린다. 너무 달지 않게 퍽퍽한 빵이 균형을 잘 잡아 준다. 식감도 그렇다. 꾸덕하면서 부드럽고 으깨지기 쉬운 노르스름한 부분과 살짝 퍽퍽한 마른 식빵 같은 부분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땅콩맛이 나는 노르스름한 부분이 곰보빵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퍽퍽한 식빵 같은 아랫부분의 빵이 단팥빵의 단팥을 싸고 있는 그런 부드러운 빵이었다면 곰보빵은 맛이 없었을 거다. 게다가 한 입 먹을 때마다 노란 부분의 알갱이 일부가 우스스 떨어진다. 작은 건 몰라도 가끔은 큰 게 떨어진다. 노랑 알갱이들을 소중하게 다루며 먹다가 혹여 큰 알갱이가 떨어지면 재빨리 손가락으로 찍어서 먹어야 한다. 요구르트나 아이스크림의 뚜껑 윗부분에 묻은 걸 먹는 것처럼 곰보빵에서는 이게 중요하다.
하지만 누가 그랬는지 곰보빵은 소보루빵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같은 빵이지만 다른 이름을 달고 있다. 단지 이름이 바뀌었을 뿐인데 소보루빵에 대한 내 애정은 생기지 않았다. 이름이 좀 생소하고 소보루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건 둘째치고 맛도 많이 달라졌다. 윗부분에 붙어있는 땅콩맛 나는 노란 부분이 약간은 촉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많이 바삭해졌다.
최근에도 하나 사 먹으면서 든 생각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너무 바삭하고 땅콩맛도 아예 나지 않는다. 마치 초코칩 쿠키가 촉촉한 버전과 바삭한 버전 두 가지가 있듯이 곰보빵의 껍데기도 그렇다. 요즘 대형 빵집에서 파는 곰보빵은 대부분 바삭한 버전이다.
나는 바삭한 버전의 퍽퍽한 곰보빵은 좋아하지 않는다. 소프트한 노란 덩어리가 얹혀서 퍽퍽한 밑의 빵과 어우러지는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돌아다니다가 프랜차이즈 빵집이 아닌 곳이 있으면 한 번쯤 들어가서 쓱 둘러본다. 대부분 촉촉한 곰보빵은 당연히 없다. 여러 가지 화려한 기교가 부려진 빵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진열대에 놓여있다. 그러면 나는 슬그머니 발길을 돌린다.
이제는 택배상자만 문 앞에 쌓여서 나를 맞이한다. 현관에 달려 나가면 부스럭거리면서 성경책에 눌려 있던 곰보빵을 꺼내주던 어머니나 할머니가 사라진 곰보빵만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