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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30. 2023

와인과 칼자국 난 얼굴

도시 스케치_중국 인촨

저녁이면 도시 전체가 군고구마를 굽는 드럼통이 된 것처럼 매캐하고 뿌옇게 된다. 나는 그 매캐하고 뿌연 도시의 밤거리를 걷는다. 장갑차와 중무장을 한 군인들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광장을 지나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왔다. 저녁에 호텔에 들어오면 우유맛과 요구르트 맛의 중간쯤 되는 고소 하면서도 상큼한 요구르트 하나가 가지런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 놓여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묵었던 호텔은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 이 호텔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요구르트를 서비스해 주는 호텔인 것 같다. 맛 좋은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오늘은 어디로 나가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한다.  날은 춥고 공기는 매캐하지만 자꾸만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은 매력이 있는 도시다.


길고 고요한 밤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서 탐험 삼아 거리로 나간다. 공기가 차갑다. 흙냄새와 불에 탄 고무 냄새가 섞인 냄새가 난다. 해질 무렵에 보이던 안개보다 진한 뿌연 공기는 해가 지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네온사인이 촌스럽지만 따스하게 여기저기서 빛난다.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귀염성 있는 양의 머리가 그려져 있는 간판이 있다. 양고기를 파는 식당이다. 대부분 양고기를 파는 곳이 많고 그냥 중국집도 있다. 나는 지난번 방문 때 양고기를 질리도록 접대받아서 양고기는 더 먹고 싶지 않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며 걷는다. 어두워졌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피자헛이 보이길래 들어간다. 보이는 메뉴를 시키고 얼마인지 몰라서 지갑을 열어주니까 알아서 돈을 빼가고 잔돈을 거슬러 준다. 만두맛이 나는 피자를 먹는다. 그럭저럭 말이 하나도 안 통해도 또 하루를 잘 보냈다.


어느덧 마지막 주말이라고 같이 일하는 현지 직원이 점심을 먹자고 나를 데리러 왔다. 중국 음식을 파는 커다란 식당 안이 주말이라 꽉 차있다. 어딘지는 모르나 시내에서는 떨어져 있는 곳이다. 빈 테이블이 거의 없다. 내가 무엇을 먹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무엇을 사줄까 생각한 파트너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는 이 식당을 고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크고 활기찬 식당이 나쁘지 않다. 재미난 것은 넓은 식당 안에 둥그런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는 많은 손님들이 와인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다. 시골에 놀러 갔는데 마을 회관 어르신들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나의 편견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여기 오기 전까지 그리고 나의 파트너와 일하기 전까지 나는 중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줄 몰랐다. 그리고 이곳이 오래된 와인의 주요 생산지인 것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그들의 일상에서 보고 놀란다. 여기는 중국이지만 백주보다는 그들의 일상에 와인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여행이던 출장이던 항상 집으로 가는 길은 서운함과 설렘이 교차된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다는 희망과 좀 더 머물지 못하는 아쉬움의 중간에 끼여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현지 회사에 영어가 가능한 단 한 명의 직원이 집에 갈 때까지 나를 도와준다. 나만 먼저 돌아가서 그런지 전날 나에게 여권과 비행기 번호를 미리 알려달라고 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백 프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참 편한 시스템이 나를 맞이했다. 그냥 짐만 맡기고 대기실에 들어가 있다가 비행기를 타면 된다. 어떤 수속도 없다. 심지어 비행기는 모든 사람이 다 타고난 후에 탄다. 탑승구로 가지 않고 대기실에서 나와 차를 타고 비행기 앞까지 가서 타면 된다. 나를 위한 전용 비행기를 타는 느낌이다. 


비행기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옆사람이 일어나서 나에게 말을 시킨다.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이마에서 눈 옆을 지나 볼까지 긴 흉터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다. 신밧드 만화 영화에서 보는 해적 두목의 칼자국 난 얼굴이 떠올랐다. 옷도 그런 풍성한 바지에 넓적한 허리띠를 두르고 있다. 순간 허리띠 뒤에서 칼이라도 나올 것 같아 멈칫했다. 설마 비행기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생각하며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손짓과 표정으로 공손히 말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북경에서 온 통역이 여기는 무서운 지역이라 아무도 출장을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밖에서 많은 사고를 치는지 중국 내에서도 유명하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그때 통역이 한 이야기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죽 좋았었는데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이런 사람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가 내 앞쪽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손가락으로 내 의자 밑에 와인 봉투를 가리킨다. 잘 들어 보니 그것을 자기가 짐칸에 올려 넣어주겠다는 이야기 같다. 위에 올리면 편한데 왜 밑에 두냐 서있는 김에 넣어주겠다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잘 보니 칼자국난 얼굴 뒤로 아는 척하고 싶은 평범한 인상이다. 내 예상이 맞았다. 그는 그것을 집어서 짐칸에 넣어주었다.  


잠시 후 매캐한 도시가 발 밑에서 작아져 갔다. 양들이 뛰노는 석회암 산과 드넓은 사막 같은 평원이 보인다. 그 옆으로 한줄기 강이 흐른다. 도시는 때 묻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말끔한 도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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