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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Jun 22. 2024

아메리카노 가능

도시 스케치_루체른

호텔 앞 카페 앤 바에 갔다. 내 방에서 커튼을 살짝 올리고 보면 오른쪽 길건너에 보이는 카페 앤 바다. 카페 밖에는 테이블이 여섯 개가 있었는데 카페의 벽으로 테이블이 세 개가 있고 그 정면으로 살짝 올라간 정원 같은 곳에 테이블이 세 개가 또 있었다. 나는 주문을 하기 위해서 문을 밀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넓고 왠지 따뜻한 느낌의 빛이 환하게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천정에 와인잔이 달려있는 바가 있었고 카운터가 따로 없는 걸 보니 거기에서 주문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그쪽으로 다가갔다. 


바 쪽으로 다가 가는데 바의 왼쪽에는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커다란 식탁 같은 테이블이 있었다. 그리고 밑에는 스탠더드 푸들이 아주 편하게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잡지책에 나올듯한 패션너블 한 안경을 쓴 나이 든 여성의 강아지 같았다. 강아지는 주인과 주인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이 지루한 듯이 뒹굴거리며 내가 다가가자 누워서 나를 힐끗 쳐다보고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는 너무 큰 강아지가 누워있어서 살짝 놀랐다. 하지만 강아지의 심드렁한 표정과 움직임을 보고 안심했다. 커피 마실 수 있나요? 내가 묻자 카페주인보다는 바텐더처럼 생긴 남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냐고 하자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메리카노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유리케이스에 들어있는 케이크를 보면서 당근 케이크를 시킬까 하다가 곰보빵 껍데기같이 몽글거리는 고명이 있는 케이크도 가리켰다. 이 케이크 한쪽과 에스프레소 한잔 주세요. 


바텐더는 싱글거리면서 알겠다고 하고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뚝딱거리며 내 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뒤돌아서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저 앞에 호텔에 묵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여기 저 호텔에서 묵는 고객들 중 한국 사람이 많이 오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국사람은 처음이고 주로 미국인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아까 나에게 아메리카노도 가능하다고 말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바텐더가 금방 뽑은 에스프레소에 생수 한잔과 작은 과자 그리고 내가 시킨 케이크를 작은 쟁반에 담아줬다. 고맙게도 가격은 너무 착했고 무엇보다 나는 물 한잔과 에스프레소의 조합을 보자 그냥 흐뭇했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그 쟁반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호텔방에서 보아둔 카페 밖의 첫 번째 벽 쪽 자리에 앉았다. 카페벽 쪽으로 등을 대고 앉아서 반대편의 테이블과 그 너머 길가 그리고 왼쪽으로는 카페의 입구와 건너편 길과 호텔을 다 쳐다볼 수가 있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뚫어져라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고 있었고 나는 거리를 관찰했다. 자전거가 지나가고 차도 지나가고 걸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여행자가 되어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순간보다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면서 거리를 구경하고 도시냄새를 맡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러면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 도시는 풍경화에 가까웠다. 차가 밀리고 길이 막히는 도시 한 복판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호수와 산이 보인다. 눈 쌓인 산을 타고 내려와서일까 아니면 커다란 호수 위를 지나와서일까 도시를 맴도는 공기는 날카롭게 차갑다. 그리고 공기의 색은 낮에는 하얗다. 어젯밤 강 주변을 산책하는데 밤에는 이 도시의 공기가 온통 푸르러서 놀랐다. 파란 커튼을 빙 둘러친 연출된 공간에 들어와 있는 느낌 들었다. 


조용하고 여기저기 다 쳐다볼 수 있고 호텔도 바로 옆이다. 이런 카페가 내가 가는 곳마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한참 내가 돌아다닌 도시의 모습을 복기하면서 앉아있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너무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기에서 점점 푸른빛이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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