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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Jun 29. 2024

크게 밝은 도시

도시 스케치_태백

오후 두 시. 해는 구름에 가려서 뜨겁지는 않다. 하지만 더운 날씨다. 아침 일찍부터 숲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 깨어나 낯선 도시를 탐험한 나는 조금씩 졸음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사방이 고요한 숲 속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얼른 저녁에 먹을 것을 사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도시의 시장은 완전히 도시다. 좁은 골목마다 모든 브랜드가 다 보인다. 그리고 자동차들이 많다. 정말 의외다. 평일 낮에 수도권이 아닌 도시에서 이렇게 붐비는 도시와 시장은 처음이다. 공용주차장에도 빈 공간이 없어서 4층까지 올라갔다. 나는 사람들이 없어서 텅 빈 공간을 상상했지만 내 상상은 빗나갔다.


시장은 미로처럼 작은 골목이 멀리 차가 다니는 길까지 끝없이 상점 사이로 이어진다. 이불 가게도 있고 정육점도 있고 옷가게도 있다. 총천연색의 뭔가가 가뜩이나 좁은 길 앞으로 다 나와서 저마다 주인을 기다린다. 나는 계속 시장 골목을 걷는다. 마땅히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게 없다.


다시 큰길로 나왔다. 시장의 주차장으로 들어오다가 본 연못공원으로 가기 위해서 길을 건넜다. 차들의 끝없는 이어짐이 놀랍다. 확실히 활발하게 경제가 돌아가고 소비여력이 있는 도시다. 약간의 주민과 대부분의 관광객이 주말이나 장날에만 붐비는 다른 소도시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연못은 작지만 맑아 보였다. 연못 주변 의자에는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죽 둘러앉아있었다. 그런데 언뜻 봐도 모두 할아버지이고 말끔하다. 나는 멋도 모르고 연못 근처로 다가가다가 할아버지들이 죽 들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괜히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공원처럼 꾸며진 주변에는 삼삼오오 아직 할아버지가 되지 않은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앉아있다. 나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자석의 같은 극끼리 일정 거리로 좁혀지면 바로 밀어내듯이 미래의 자신을 보고 흠칫 놀라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다.  


연못 사진 한 장 찍었는데 다시 졸리다. 눈 뒤쪽으로 졸음이 빠르게 오간다. 빨리 숙소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쉬어야지 하면서 다시 시장으로 길을 건너려고 기다렸다. 그때 시장의 메인 골목 오른편에 서너 번째쯤 상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만두집 간판이다. 큰 솥이 밖에 놓여있는 게 보인다. 직접 만드는 만두면 만두나 사가지고 가서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피곤한 심정이 사라졌다.


만두가게 앞에는 한 명이 주문을 하고 있고 봉투에 그걸 담는 여주인이 있다. 그리고 내 옆으로 작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섰다. 나는 잠시 기다리면서 만두가게를 둘러본다. 밖에는 솥이 여러 개 있고 그 뒤에 왼쪽옆으로는 도넛을 만들어 넣어둔 유리 상자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두꺼운 비닐로 막이 쳐져있고 그 안에서 남자 주인이 만두를 재빠르게 만들고 있다. 나는 직접 만드는 만두를 사 먹어야지 결심하고 메뉴를 쳐다본다.


왕만두와 그냥 만두가 있고 도넛 세 종류가 있다. 팥이 들어간 넓적한 도넛도 내가 좋아하는 빵이다. 근데 한 개에 천 원이 아니라 세 개에 삼천 원으로 적혀있다. 세 개를 다 사면 먹기 힘든데라고 생각 중인데 내가 많이 기다리는 줄 알고 안에서 만두를 빚던 남자 주인이 나와서 나에게 주문을 묻는다. 주인의 말투가 중국어에 가까워서 만두맛에 신뢰가 갔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하나 그리고 도넛 세 개를 달라고 했다. 


얇은 거냐고 다시 묻는다. 그렇다고 답한다. 나는 호빵은 좋아해도 왕만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주인이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찜기에 올려서 내 앞에 솥과 솥사이에 찜통 위에 놓고 찌기 시작한다. 그사이 여자주인은 앞에 손님을 보내고 내 옆에 서 있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요?" "나는 고기만두 다섯 개." 할머니의 목소리가 장난기가 넘쳤다. "할머니 이제 다 나으셨나 봐요." 그리고 할머니와 주인여자는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못 알아듣는다. 옥수수란 말만 들린다. 할머니는 대화를 마치고 아래쪽 길로 내려가고 솥 앞에는 나만 남는다. "3분 정도 기다리셔야 돼요." 주인여자는 내가 지루할까 봐인지 말을 시킨다. "네." "도넛에 설탕 묻혀 드려요?" "아니요. 그냥 주세요." 여주인은 하얀 봉투에 내 도넛을 담고 나는 고개를 돌려 시장 길을 쳐다본다. 


아까 내 옆에 있던 할머니가 건너편 노점상 앞에 앉아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더운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는지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아있다. 근데 할머니의 모습이 별로 힘들어 보이지가 않는다. 삶을 즐기는 여유가 느껴진다. 문득 깨닫는데 시장의 상점에는 다 여자 주인들만 보인다. 길 건너편에 공원에는 할아버지들만이 벤치에 앉아 있어서 놀라웠는데 신기한 도시다. 


나는 태백에 있다. 크게 밝은 도시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산 길을 돌아 돌아 산에서 산으로 여기저기 갈 수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웅장한 것도 없다. 깜짝 놀라는 것은 있다. 아침저녁으로 춥다. 정말 숲이 숨을 쉬는지 공기가 너무나 차갑다. 길 가다 문득 쳐다보면 숲 위로 해가 뜨고 진다. 붉은 하늘과 푸른 숲, 그리고 차가운 공기가 어울려서 도시의 냄새도 좋다. 왠지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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