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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Jul 27. 2024

냉소 그리고 다윈

나의 영국 이야기_줄리언반스

나는 언젠가부터 소설책은 잘 사지 않는다. 한때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이후로 소설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서 고전 아니면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연말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소설책을 충동구매로 샀다. 매일 다르지만 똑같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연말이나 연휴가 공허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어떤 것에도 감동받을 수가 없던 때였다. 


그날은 문득 글자에서 감동받고 싶어서 소설책을 샀다. 하지만 조금 읽다가 뻔한 결말이 유추되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다 읽어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나 문장에 감동이 없었다. 이런 책을 쓴 작가가 정말 유명한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 작가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어느 날 나는 인터넷 서점을 어슬렁거리다가 제목과 내용을 슬쩍 보고 책을 샀다. 그때는 죽음에 대해서 책에서 얻고 싶은 게 있었다. 근데 그 책은 읽을수록 겉표지와는 다르게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그리고 에세이나 산문이라고 하기에는 참 어려운 논문스러운 책이었다. 전공서를 읽는 것처럼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가 너무 방대하게 지식을 늘어놓고 파고들어 가서 무식한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다가 글의 흐름을 잃곤 했다. 


작가는 책에서 자주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갖가지 지식과 그 지식에서 다른 지식으로 이어지면서 설명을 하고 추적을 해나갔다. 나는 작가의 방대한 지식의 양이 놀라웠다. 그런데 그 촘촘한 지식이나 주제에 대한 계속되는 연결과 추적은 지루하면서도 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책은 몹시 난해하지만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매력이 곳곳에 많았다. 


그중에 최고는 관습이나 편견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 역사나 이유를 추적해서 비웃는 냉소적인 작가 특유의 비판 코드였다. 나는 모든 면에서 상식이나 편견을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참 신선하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좋았다. 그래서 작가의 프로필을 봤더니 어딘가 낯이 익었다. 내가 예전에 별거 아닌 소설이라 탁 덮어버린 그 책을 쓴 사람이었다. 


만약 내가 책을 살 때 작가에 대해서 봤더라면, 그리고 내가 한번 읽었던 소설을 쓴 작가라는 걸 기억해 냈더라면 나는 그 책을 사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같은 사람이 쓴 책인데 소설과는 다르게 내 맘에 든 책이었다. 그 후 나는 그 사람이 쓴 다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왜 그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말을 듣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작가가 영국인이라는 점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관습이나 권위에 도전하고 진실을 파고드는 면에서 다윈의 후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에서는 대단한 감동이나 아름다운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딱딱하고 장황스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은 거울을 보는 듯한 나 같은 인간동물의 모순에 대한 인정의 웃음이 대부분이다. 계속 읽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 읽으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허상들이 정말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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