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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Jul 13. 2024

비 오는 광장에서 땡땡이를 찾아

도시스케치_브러쉘

어떤 나라나 도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대체로 책을 읽다가 그렇다. 책 속에서 나오는 장소 또는 그 책을 쓴 작가와 연관이 많은 장소들은 시간 날 때 찾아가 본다. 스토리가 엮여 있는 장소는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감정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건 보고 생긴 이미지와는 다르다. 나는 나의 그것들과 실제와의 만남을 좋아한다. 그 순간에 밀려드는 감동은 봤기 때문에 나오는 감동이 아니다. 실제의 이미지를 더해서 더 큰 상상의 이미지를 내 안에 출력하는 감동이다.


벨기에에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일단 벨기에에 도착했으니 시내 구경은 한번 하고 싶었다.  


중앙역에서 광장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007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오래된 낯선 도시에서 악당들에게 쫏기는 신을 찍기에 딱 좋았다. 나는 주인공이고 뒤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나를 죽이려 쫓아온다. 그러면 나는 이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로 막 피해서 걷다가 상점에 휙 들어가서 쫏기는 사람이 아닌 그냥 관광객으로 돌변해서 맛보기 초콜릿을 하나 받아먹으면서 뒷문으로 유유히 빠져나간다. 내가 들어 온 문쪽의 창문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사람들을 밀치며 다급히 지나가는게 보인다.


뻔한 영화를 장면을 상상하면서 거리를 걸었다. 건물이나 광장이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장엄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도시에 왔으면 뭔가를 느껴야 하는데 느껴지는 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이고 상점의 점원들은 친절했다. 여기는 도대체 어떤 느낌의 도시일까 느껴보려고 걷고 또 걸었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빗줄기는 제법 굵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광장에 사람들은 바글거렸다.


비가 그칠듯하다가 세게 내리기를 반복하길래 우산을 쓰고 사람들을 피해서 길을 걸었다. 돌바닥이 부담스러웠다.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비 때문인지 울퉁불퉁 거리는 돌바닥이 영 맘에 안 들었다. 오래된 성과같이 보이는 건물들로 둘러 쌓인 넓은 광장에는 빗속에서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이 넘쳤다. 그런 인파 속에 우산을 들고 서있자니 마음이 끌려서 온 곳이 아니라 그런지 더더욱 그렇고 그런 광장이었다.  


문득 벨기에에 왔으니 와플이나 초콜릿을 사 먹어야 하나 생각했다. 생크림인 잔뜩 올려진 와플은 내 취향은 아니어서 줄이 길게 늘어선 와플집 앞에서 냄새만 맡았다. 냄새는 맛있었다. 이 집 저 집 초콜릿집에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 이런 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고 싶은 대로 통속에 가득가득 들어있는 형형색색의 초콜릿을 다 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건강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철든 인간이었다. 유혹을 물리치고 초콜릿은 샘플 맛보기정도로 그쳤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다니다 처음 왔던 길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키는 대로 안 들어가 본 상점에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중간쯤 땡땡이가 있었다. 땡땡이의 모험 만화책의 주인공이었다. 지금도 내 책꽂이에는 푸른 연꽃이라는 빨간색 커다란 만화가 있다. 땡땡이와 하얀 푸들 강아지는 오래된 내 친구였다. 땡땡이의 모험은 내가 여러 번 다시 읽고 또 읽은 최초의 책이자 소유 욕심이든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땡땡이가 너무 반가워서 그 옆에서 두리번거리면서 한참을 보았다. 잊고 지낸 땡땡이를 그의 나라 벨기에에서 다시 만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초콜릿을 사러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땡땡이 주변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거리를 나왔다. 사실은 땡땡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광장의 가운데에 스타벅스에 갔다. 스타벅스의 규격화된 서비스와 모던함이 가끔은 필요할 때가 있다. 너무 관광지스러운 곳에서는 항상 그렇다. 비 오는 거리를 내다보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드나들고 광장 밖으로는 빗줄기가 거세졌다. 자꾸만 땡땡이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데 돌길을 걸어서 다시 갔다. 땡땡이옆에서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뭔가 이 도시가 그리고 이 여행이 재미있어졌다.


다시 용기가 생겼다. 푸른 연꽃 만화책을 보고 또 보던 그때부터 내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기심을 가득 품고 돌아다녀보자고 다짐하면서 상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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