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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4. 2023

거칠고 푸르고 빛나고

도시 스케치_마르세유

이렇게 높은 언덕이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항구 도시는 처음이다. 미로처럼 이어진 길과 쭉쭉 뻗은 가로수가 끝없이 펼쳐져있다. 겨울이지만 도시 전체에 내리쬐는 태양은 강렬하고 눈이 부시다. 항구 쪽으로 갔다. 바다는 너무나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데 항구 앞에 사람들은 몹시 붐볐다. 삶이 항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나 같은 말끔한 구경꾼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태양이 이토록 뜨거운 겨울이 있을 수 있다니 지중해의 태양은 내가 아는 태양이 아닌 것 같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잠시 어지러웠다. 

빛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하얗게 나온 사진처럼 바다의 표면이 언뜻언뜻 거울처럼 환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면 지중해의 검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과 배들이 얼마나 많이 지나다녔을까? 바다 위를 지나 한 번씩 부는 바람은 날카롭고 차갑다. 바람이 용기 없는 사람은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으로 가지 못할 거라고 말해 주는 듯했다. 

나는 겉옷의 깃을 세워 목까지 올리고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거대한 검푸른 거울이 일렁인다. 태양이 바다의 표면 위에서 반짝이며 부서진다. 끝없이 비추고 부서지고 바다와 태양의 움직임이 도시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멀리 구항구 쪽으로는 대관람차가 보인다. 흰색 원형의 철제물이 쓸쓸히 겨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지친 것 같기도 하다. 


랭보, 르코르뷔지에, 그리고 또 성당. 이 도시에 이야기와 볼거리는 많다. 하지만 나는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거울이라는 작품을 보러 이곳에 왔다. 항구에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곳의 상징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는 반짝이는 거대한 거울 장막이 있다. 사방은 뚫려있고 누구나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있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천장 위로 푸른 바다가 그대로 비친다. 짙푸른 바다가 천장에 떠 있다. 왜 그가 이 조형물을 여기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   

거울이라는 조형물 속에 들어와서 항구를 보니 뜨겁게 내리쬐던 지중해의 태양보다 바다의 짙푸름이 더 매력적이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바다가 생생하게 보이다니 볼수록 비 현실적이다. 바다를 머리 위에 두고 멀리 바다를 보면서 바다의 바람을 맞고 있다. 나는 건축가의 상상에 속으로 들어가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거울이 마르세유를 다 담고 있다. 거칠고 푸르고 빛나고.  


도시 앞의 섬을 돌아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유람선을 탔다.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갑판에 앉아 마르세유라는 거대한 항구도시를 바라본다. 배가 가르며 지나는 바다의 물살이 촘촘히 내게 와서 이슬비처럼 떨어졌다 사라진다. 바람은 점점 거세고 차갑다. 하지만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은 얼굴이 따갑도록 아직도 내리쬐고 있다. 배가 항구에서 멀어질수록 풍경화가 그려진다. 언덕 위에 거대한 성당이 보이고 그 밑의 항구에 배들과 대관람차가 바다 위에 떠 있다. 적당한 습기와 바다 냄새 그리고 뜨거운 태양과 거친 바람을 모두 기억하고 싶다. 

오후 마지막 배를 탔는데도 돌아올 때까지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배에서 내려 오늘 저녁은 어떤 걸 먹을지 생각하면서 터벅터벅 걷는다. 길바닥의 돌들은 뭉툭하지만 오래되고 거대하다. 해는 거의 다 졌다. 길가 상점들의 불빛이 환하다. 태양은 눈을 감고 잠들려 한다. 그러나 아직도 지중해는 거칠게 일렁이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게 많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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