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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2. 2023

빈센트 반 고흐

도시 스케치_엑상프로방스

런던에 가서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보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뮤지컬을 보고 싶기는 했어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너무나 웅장해서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런던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특히 내셔널 갤러리는 여러 관광 명소와 거리가 가까이 있는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오가면서 들락 거리기를 두 번이나 했다. 거기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 둘러 쌓여서 까치발을 들고 쳐다본 그림은 고흐의 해바라기였다. 사람들이 붐벼서 그런지 그림은 생각보다 작았고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실제로 본 고흐의 해바라기는 실망이었다. 고흐가 그린 그림들 중에 밤의 풍경들을 보면 하늘과 별들이 아른거리며 쏟아져 내릴 듯하다. 나는 그런 밤의 풍경과 휘어질 듯이 회호라기 소용돌이를 연상시키는 나무가 있는 들판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 그리움이 솟아오른다.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 나서 나는 그의 그림이 아니라 그가 머물던 장소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쯤은 그림의 대상을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죽기 전까지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던 남프랑스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그가 느꼈던 들판과 하늘과 거리를 보고 싶었다.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하다. 남프랑스의 어느 도시부터 내가 여행을 시작했을까? 겨울이었다. 하지만 날은 맑았고 더웠다. 심심하면 불어대는 바람도 차갑지 않았다. 달력의 계절은 2월인데 실제의 계절은 겨울과 봄 사이였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면서 아몬드 나무를 보았다. 우리 집 거실 창가에 세워둔 고흐가 그렸던 아몬드 나무가 생각났다. 벚꽃 같은 꽃송이들을 달고 있지만 생기 발랄해 보이지는 않았다. 겨울 아몬드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 채 숲이 아니라 넓은 벌판에 퍼져 있었다. 왠지 현실의 아몬드 나무도 쓸쓸하게 보였다.  


아를에는 오래된 건물들 사이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많았다. 그런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성당을 발견했다. 성당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구걸하는 여인이 있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게다가 성당의 건물에서 어떤 감명도 받지 못한다. 한때 교황도 살았다는 거대한 아를의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성당을 나와서 비가 올 듯 잔뜩 흐려진 하늘 아래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고흐가 그린 카페거리의 배경이 된 카페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카페는 모조품처럼 조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진다고 더 나은 모습일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런 기대 없이 엑상프로방스에 갔다. 세잔의 도시라고 하지만 나는 세잔과는 상관없이 왠지 도시의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구시가지 광장 앞에 많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있고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노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밝은 색 건물들과 하얀색의 돌바닥은 오래된 도시를 현대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리고 광장의 사방에서 햇볕이 들어와 도시가 어둡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그곳에서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가장 구석자리에서 하우스 와인을 마시면서 식사를 했다. 식사는 아주 훌륭했다. 복잡한 카페의 분위기도 서빙을 하는 웨이터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거리를 나와서 광장의 비둘기와 분수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이 모두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고흐의 흔적을 찾아 거리를 관찰하듯 돌아다니던 관광객에서 그들 사이에서 거리를 거니는 한 사람의 산책자가 되었다.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며 사진을 찍겠다고 벼르던 긴장된 손에서 비로소 힘이 빠졌다. 나는 어슬렁 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건물 사이로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햇볕은 따스했다.  

다리가 아파서 잠시 서있었다. 내 앞에 작고 때 묻은 강아지와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가 광장을 보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니면 그냥 앉아 있는지 모르지만 그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동반자였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알맞은 빛과 거리의 배경이 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초간 세상이 멈추고 내 앞의 현실이 따스한 그림 한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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