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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8. 2023

September 11

소설 같은 현실

햇살이 눈부신 낮에는 살짝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어디든 돌아다니고 싶은 늦은 여름이 왔다. 직장인에게 추석이라는 긴 연휴는 일상을 버리고 어딘가 떠나가라고 유혹한다. 몇몇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억이다. 그런데 뜨거운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한다. 슬픔 때문도 기쁨 때문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일이 많았던 입사 4년 차 대리 시절이었다. 내가 여름휴가를 쓰지 않았던 이유는 추석 연휴에 휴가를 붙여서 길게 다녀오고 싶어서였다. 그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나는 휴가 날짜를 허락받았고 비행기표도 구매해 놨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이십 대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던 나는 한국에 있는 게 항상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지루하던 시절이었다.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방안에 있던 티브이를 켜고 그때까지도 존재했던 주한 미국 네트워크 티브이 채널을 보곤 했다. 내 긴 휴가가 다가오던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잠들기 전까지 AFN채널을 누워서 보고 있었다. 그때 중간에 갑자기 CNN 뉴스가 나왔다.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빌딩 한쪽 꼭대기 부분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실시간 중계였는데 뉴스 앵커는 비행기가 사고인지 테러인지 정확히 파악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냥 큰 여객기가 한쪽 건물에 부딪혔다는 것이었다. 그때 뉴스에서 나오는 긴박한 목소리와 화면으로 보이는 건물의 검은 연기와 대조되는 맑은 하늘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뉴스 진행자는 테러인지 사고인지 확인되지 않아서 그냥 목격자와 전화통화로 여객기가 부딪혔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만 연달아 계속했다. 

잠시 어리둥절해서 검은 연기가 나는 빌딩 화면을 보고 있던 중 다시 한대의 비행기가 옆의 건물에 돌진해 와서 박혔다. 부딪혔다기보다 정말 건물에 비행기가 영화처럼 뚫고 들어가 버렸다. 건물에서 아까보다 진한 연기가 펄펄 나고 있었다. 중계하던 뉴스 진행자도 그가 본 것을 믿을 수가 없는지 목소리는 흥분 상태였다. 뉴스를 보고 있던 나는 이게 분명 실시간으로 해주는 긴급 뉴스인지 영화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문득 이미 사놓은 내 엘에이행 비행기표는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의 연기는 훨씬 더 심하게 났고 나중에 무너지는지 하얀 연기가 온통 맨해튼 전체를 다 뒤덮었다. 그날 뉴스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워싱턴 디씨의 펜타곤 건물에도 비행기가 추락하여 건물 일부가 부서지고 화재가 나고 있다고 중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대의 비행기가 더 납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뉴스도 나왔다. 마치 영화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할 때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911 테러 사건이 모든 사람들의 이슈였다. 사람들은 미국이 몹시 위험하다고 나의 여행을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가고자 한 곳은 동부지역이 아니었다. 엘에이로 들어가서 샌디에이고를 기점으로 애리조나의 남쪽과 그랜드캐년을 여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때 모든 호텔의 방값이 굉장히 저렴하게 할인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한적하게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고급 호텔을 거의 평소의 반값으로 예약했다. 그리고 911 테러 사태가 나고 열흘 뒤 미국 엘에이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을 하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날씨였다. 내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불과 열흘 전 뉴욕에서 일어난 엄청난 테러로 사망자 숫자가 정확히 나오기도 전이었다. 


엘에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활기가 사라진 공항은 여행의 설렘을 잠시 앗아갔다. 나처럼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마중 나오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공항은 폐쇄되어 실제 승객 이외에는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개인의 승용차나 택시와 같은 일상적인 교통수단은 공항의 출입국 건물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입국 승객들은 짐을 찾아서 임시 셔틀을 타고 공항 건물에서 한참 떨어진 일정한 주차 장소에 모두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렌터카 업체까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차를 빌렸다. 

차창 밖 엘에이의 풍경은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모두 어디론가 숨어있는 듯한 서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맑은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는 늦은 여름이었다. 나는 샌디에이고까지 바닷길로 차를 몰고 가면서 창을 열어 태평양의 바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해가 다 저물어 늦은 밤이 되어 샌디에이고에 도착했다. 그립던 태평양의 밤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검고 푸르면서 파도가 무섭게 몰아쳤다. 그날따라 몰아치는 파도소리가 몹시 크고 사납게 들려서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바닷가를 산책했다. 어제 밤새도록 잠들기 전까지 요란했던 파도는 조용해졌다. 곧 비가 올 듯이 구름이 잔뜩 낀 하늘 때문에 날은 춥고 어두웠다. 해변가 산책길에서 가로등 밑 기둥에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꽃송이들과 초가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추모 인사를 하기 위해서 그 작은 제단 앞에서 멈췄다. 그제야 내가 지금 어떤 나라에 와있는지 실감했다. 꽃송이들 사이에 초들의 불꽃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애리조나의 세도나에서 며칠 머물다가 플래그스텝을 지나 그랜드 캐년의 사우스림을 다녀왔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였지만 길에도 그랜드캐년에도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그날 그랜드 캐년을 다 보고 차로 다시 왔던 코스를 따라 내려오는데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해발 고도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 달랐다. 단풍이 든 나무 숲을 지나고 소나무 숲도 지나고 붉은 흙 기둥이 있는 초원도 지났다. 나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는 고즈넉함과 찬란한 초가을 햇살이 깃든 자연의 풍경이었다. 티브이나 라디오에서는 사상 최악의 테러에 대해서 뉴스가 쏟아졌고 외국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곳곳에서 느껴졌지만 나의 여행은 날씨만큼 빛나고 평화로웠다.


911 테러 10주년이 넘은 어느 날 그때의 사건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날 3,000명 가까이 되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어 워싱턴 디씨를 향해 가던 비행기를 추락시키기 위해서 전투기가 투입되었다. 그때 전투기를 몰았던 조종사들의 증언은 비장했다. 테러범에게 납치되어 가는 비행기를 멈추기 위해서 전투기에 미사일을 탑재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대로 전투기를 이륙시켰다. 조종사들은 필요하다면 전투기를 부딪혀서라고 비행기를 막아야 함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비행했다. 다행히도 마지막 비행기는 테러를 일으키지 못하고 들판으로 추락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용기 있는 승객들이 테러범을 제압하여 목숨을 걸고 테러를 막은 결과였다. 무너질 건물에서 그리고 납치된 비행기에서 두려움에 떨며 가족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볼 수가 없었다.  


매년 9월이 되면 911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내 여행도 기억된다. 수년이 지나 무너진 무역센터 부지에 추모공원이 들어서기 전 공사중일 때 그라운드제로를 지나쳤다. 공사는 한참 진행 중이었다. 무심한 철 골조물들이 차가워 보였다. 그때 내 마음 한편에 무겁게 떠다니는 생각이 있었다. 인간은 어리석지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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