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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7. 2023

내 영혼에도 냄새가 있다면

사라지는 등장인물

어릴 적 학교는 나에게 그렇게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칠판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이 지루했다. 공부가 싫은 것보다 그 환경이 주는 부자연스러움이 싫었다. 나는 조금만 아프면 그냥 집에서 쉬는 게 훨씬 좋았다. 집에서는 주로 마당에 나가서 놀면 시간이 잘 갔다. 우리 집 마당 가운데 있는 라일락 나무는 내가 가장 많이 올라가 앉아 있던 장소였다. 그 나무의 중간쯤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이 평화롭게 불면서 기분 좋은 졸음을 몰고 왔다. 대문으로 가는 돌계단 사이에는 개미집이 많았는데 개미를 관찰하는 것도 주된 놀이 중 하나였다. 계단에 과자 부스러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어디서 나왔는지 긴 줄로 열을 맞추어 과자를 부지런하게 나르는 개미들이 신기했다. 어떤 날은 날개가 달린 여왕개미가 죽어있고 많은 개미들이 우왕좌왕하며 주변을 맴도는 것도 보았다. 개미뿐 아니라 거미도 즐거운 관찰 대상자였다. 담벼락의 거미줄에 개미를 던져주면 커다란 거미가 집에서 나와 잡아먹는 걸 보면서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집에서 같이 놀아 줄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는 몸의 대부분은 하얗고 눈의 반쪽은 검은 털을 가졌다. 대문 앞에 그 친구의 집이 있었는데 내가 학교를 갈 때도 학교를 갔다가 집에 올 때도 나는 그 친구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집으로 돌아올 때가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친구의 집이 있는 대문 앞에 다가가기 전부터 친구는 내가 오는 걸 알아차렸다. 멀리서도 내 냄새를 맡고 달려와 대문을 사이에 두고 나를 기다리면서 대문 아래 틈 사이로 코를 내밀고 내 발이 다가오는 걸 보고 있었다. 대문 앞에 서서 내가 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 기다리는 순간에는 너무 좋아서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어쩔 줄 모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문이 열려서 내가 들어가면 나를 향해 폴짝거리며 온몸과 꼬리를 흔들며 뛰었다. 나도 그만큼 기쁘고 행복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내내 그 친구는 한결같이 나를 환영해 주었다. 일 년이 365일이라면 최소한 하루에 2번 그리고 10년 이상 나를 볼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뻐해 주었다. 나도 집에 오면 나를 따르는 친구와 한동안 시간을 보내느라고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의 무릎에 발을 올리고 계속 나를 쳐다보면 아무리 바쁘고 추운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한참을 친구를 만져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만져주기 시작하면 친구는 배를 보이면서 내 앞에 누웠다. 

내가 우리 집 대문에서 현관문까지 가는 길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몇 번을 내 앞에 배를 깔고 누워서 나의 길을 방해해도 계속 안아주고 만져 줄 수밖에 없는 사랑 그 자체였다. 나는 배도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고 머리도 만져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의 표현을 다 했다. 그러면 친구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혀로 내 손을 핥아 주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학교에 가서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어쩔 때는 해가 지고 밤늦게 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의 냄새가 나면 한밤중에도 집에서 나와 변함없이 기쁨으로 나를 환영해 주었다. 주말에는 마당에서 그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나를 보면 마당을 같이 걷고 뛰고 그리고 내 앞에서 만져달라고 누워서 뒹굴며 나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어느 날 시간은 흘러 친구가 떠났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내 일부가 사라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다. 나는 속으로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날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그 친구가 먼저 내 영혼의 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며 나에게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나와 눈을 맞추고 배를 만져달라고 누우면 나는 한참을 만져 줄 것이다. 그러면 친구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혀로 내 손을 핥아 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영혼에도 냄새가 있다면 그러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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