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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26. 2023

당신의 영혼은 얼마입니까

소설 같은 현실_위로 차림표

산책을 하다가 기분이 좋거나 날씨가 좋으면 오늘은 좀 더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는 평소에 건너지 않는 신호등을 건넌다. 신호등을 건너서 작은 공원을 지나 커다란 절을 향해 걷는다. 절 앞에는 항상 한 명의 사람이 앉아서 시위나 구걸을 하고 있다. 어쩔 때는 경찰이 와서 옥신각신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조용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절로 들어가는 커다란 입구의 오른쪽에는 식당과 빵집 그리고 용품가게가 있다. 가끔 커다란 플래카드에 식당메뉴와 가격을 적어서 홍보하기도 한다. 용품가게는 유명한 만화가가 방송에서 물건을 사간 곳이라는 홍보물을 크게 붙여 놓기도 했다. 왼쪽에는 템플스테이를 위해서 상담을 받거나 자료를 받을 수 있는 매표소 같이 생긴 곳이 있다. 


다양한 비즈니스 구역의 길을 지나서 올라가면 커다란 문에 절을 지키는 사대천왕들이 있다. 각각의 이름이 있는데 나는 잘 모른다. 신기한 것은 그 앞에 작은 꽃들이나 생수가 놓여있다. 생수를 바치는 게 볼 때마다 신기하다.  거기를 오가는 불교 신자들이 고개 숙여 합장 인사를 하는데 가끔 지나는 내가 인사를 받는다. 나는 문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서 오른쪽으로 간다. 숲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천막으로 카페가 있고 풀빵과 커피를 판다. 의자들이 절 밑의 경치를 향해 놓여 있고 나는 거기를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도시 속에 짧지만 산속의 길이 있다. 거의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길이다. 십분 정도 도시 안에서 산속을 즐기고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나무들이 무성하고 아래쪽은 절이 위쪽으로는 학교가 있다. 가끔씩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조용히 걷거나 속삭인다. 십 분쯤 명상 길을 걸다가 길이 끝나면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커다란 불상이 있는 탁 트인 기도 장소도 있고 여러 채의 법당이 있다. 차를 파는 좀 괜찮은 카페도 있고 그 옆에는 기와에 이름을 새기는 곳도 있다.


대웅전에 오면 불탑이 있고 초가 수백 개 켜있다. 많은 등도 달려있다. 그곳에서 돌계단을 내려가면 양쪽으로 사무국 같은 곳이 있다. 초도사고 쌀도 사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커다랗게 기도의 형태와 가격이 차림표처럼 붙어있다. 가격은 내 기준으로 비싸다. 욕심을 버려서인지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해 본 적이 오래전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다시 내가 올라온 사대천왕이 있는 문이 보인다. 이제 절을 벗어나 다시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로 나간다. 집으로 가다가 맥도널드에 들려서 제로콜라 라지 한잔과 에그머핀을 하나 살 거다. 안에서 길거리를 보면서 먹어도 좋지만 천천히 콜라를 마시면서 머핀봉투를 들고 집으로 갈 생각이다. 길에서도 즐겁고 집에 가서도 머핀이 남아있으니 두배로 즐거울 거다. 그 생각을 하니 절을 나서는데 벌써 설렌다. 


일찍 일어난 주말의 아침에 이 정도면 내 영혼에 위로가 충분하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맥도널드로 향한다. 내 영혼은 오천 사백 원이어도 좋다. 오천 사백 원어치의 위로를 받아도 행복하고 평온하니 가성비 좋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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