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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28. 2023

흡연 헬멧을 쓰시라고요

도시스케치_구룡포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이다. 나는 구룡포 방파제 멀리에 있는 빨간 등대의 불빛을 본다. 바다가 환하다. 배가 나간다. 새벽 바다에 환한 불빛이 퍼진다. 아침이 오지만 구름은 겹겹이 해를 가리고 해를 덮은 구름이 슬며시 붉게 물들어 간다. 하늘은 점점 더 붉게 번져간다. 그리고 날은 밝는다. 바람도 잦아든다.

  

산책이나 해볼까 하고 길을 나섰다. 방파제는 보기보다 무척 길다. 방파제 멀리 등대까지 걸어가는 길의 바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멀리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방파제의 돌들이 만난다. 산책 나온 동네 어르신 아주머니 한분이 무척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서 금세 멀리 가신다. 


바다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은 푸르고 검은 바다 위에서 오렌지 빛으로 퍼져간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선과 면의 색들이 새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들은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표면에서 손짓을 한다. 새로운 날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바람은 다시 거세게 불었다 멈췄다. 멀리 보이는 언덕의 동네에 아파트가 보인다. 저런 곳에 살면 어디선가 바람이 돌아서 다시 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방파제의 끝에 있는 등대에 거의 다 왔을 때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으로 코너를 돌면 등대 쪽으로 가는 길인데 그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소리만 듣기로는 담배를 피우다가 바다에 꽁초를 버리는 사람에게 아주머니가 뭐라고 했고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욕을 하며 싸우는 소리다. 보통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소리가 몹시 크고 무섭게 들렸다. 과거 포항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가 포항은 시내에 나가면 항상 싸움이 난 것을 안 보는 날이 없다고 한 기억이 났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요란한 싸움의 소리가 들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 오늘처럼 조용한 아침 산책길에 듣기는 처음이다. 빨간 등대를 향해 코너를 돌았다. 싸움 소리의 주인공들은 저 멀리 걷고 있는데 이까 보았던 아주머니와 그리고 바다를 보며 서 있는 나이 든 아저씨였다.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아저씨들에게 직접적으로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아저씨는 얼굴이 화가 단단히 나있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담배는 집에서 혼자 피우거나 밖에서 피우려면 헬멧 같은 담배 피우는 장치를 쓰고 혼자 연기를 온전히 다 마셔가며 피우는 게 맞다. 그 비싼 담배 연기를 뭐 하러 다른 사람까지 마시게 낭비를 하는지 담배회사는 담배 피우는 헬멧을 빨리 만들어서 보급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담뱃갑과 꽁초 부분에 바코드를 넣어서 구매자 추적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파파라치들은 쓰레기투기자들을 고발해서 돈도 벌 수 있고 쓰레기도 줄어들고 세금도 늘어날 것이다.  


전날은 비가 왔었다. 바람 때문에 우산이 소용없는 그런 비였다. 그러나 비는 너무 맑은 날보다 가끔은 더 기억할 거리들을 많이 만들어 준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구름이 없으면 아무리 맑은 하늘도 사진을 찍으면 그저 밋밋하다. 하얀 구름이라도 좀 깔려있어야 한다. 이곳은 구름이 풍부하고 모양도 웅장했다. 등대까지 가서 다시 방파제를 향해 걸어오는데 구름이 조금은 걷히고 있었다. 오렌지빛 아침 햇살이 조용히 하늘에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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