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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Nov 21. 2023

강아지 두 마리와 컵라면

도시 스케치_사천

내가 그 편의점에 들어간 것은 그곳에 도착하고 이틀이 지난 뒤였다. 첫날은 그 편의점 앞을 지나쳐서 얼마 더 걸어 길의 끝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강아지 두 마리가 길 위에 엎드리고 앉아서 심드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경계심도 다정함도 없는 강아지들이었다. 원래 이곳은 이렇게 별다른 게 없는 그런 동네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했다. 나는 강아지들을 지나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걸었다. 입구에는 작은 간판으로 유료낚시를 하러 오는 차량 말고는 차량의 출입을 금한다고 쓰여있었다. 한 시간 전쯤 나는 차를 몰고 와서 그 간판을 보고 차를 돌렸었다. 

 

외부 차량 진입금지 간판을 지나 들어가니 정면에는 마을 회관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회관의 왼쪽으로는 방파제가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뒤쪽으로 향하는 좁은 길과 각종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나는 좁은 길을 통해 마을 회관의 뒤쪽 마당으로 들어갔다. 거기가 내가 있는 곳에서 이 마을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의 끝이었다. 더 걸어가려면 마을의 위쪽 집들 사이의 꼬불거리는 언덕길로 걸어가거나 거기서 더 위쪽의 찻길로 차를 타고 지나가야 했다.


나는 길의 끝에서 보이는 바다를 보았다. 바다 위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집들이 네다섯 채 떠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돌벽과 나무가 튀어나와서 바다가 보이지 않아서 낚시집이 바다에 더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조용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다 바로 위의 하늘에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아까 내가 걸어올 때도 해는 길게 한줄기 붉은 그림자를 바다로 드리우며 저물고 있었다. 그때의 해는 제법 큼지막했다. 그 해가 점점 아까 내가 바라보던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가버려 여기까지 온 것이다. 


바다는 너무 조용하고 파도도 치지 않고 너무나 습하고 더웠다. 걸어오면서 보니 어떤 사람들은 노을이 지는 바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노을이 지는 바다 앞의 벤치 앞에 앉아서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 있었다. 양식장 어민 이외에는 출입금지 경고간판이 붙어 있고 난간과 자물쇠가 달려있는 구간을 지날 때였다. 어떤 왜소한 젊은 사람이 바다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뭔가 불안해 보였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불법을 목격한 사람을 쳐다보는 불안한 눈빛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눈빛은 좁은 계단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그들을 지나 마을의 끝까지 걸었고 저무는 해도 나를 따라 걸었다. 마을에서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제 해는 완전히 서쪽으로 더 가버려서 마을 끝의 나무와 돌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같은 시간에 안개가 덮여 보이지 않는 노을을 옆에 두고 또 걸었다. 뿌연 안개가 살짝 붉어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냥 뿌옇게 보이는데 노을이 진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으나 우산을 쓰기에는 바람도 제법 강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어제 마을 입구쯤에 심드렁하게 엎드려 있던 강아지 두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문득 마을 입구에서 조금 못 미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조용해서 그 근처에서 나에게 현실감을 주는 곳은 편의점뿐이었다. 

 

편의점 안은 비좁았다.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아이스내장고가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있는 컵라면 진열대를 흩어보았다. 내가 찾는 라면이 있었다. 라면을 들고 계산을 했다. 계산대 아주머니는 나이가 들어 보였고 친절도 불친절도 아닌 그냥 원래 굳은 무표정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던 강아지 두 마리의 표정과 닮아있었다. 아주머니는 봉투가 필요 없냐고 물었고 나는 봉투는 필요 없었다.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을 들고 다시 길을 걸었다. 


바람이 세게 불고 안개 때문인지 노을은 사라졌다. 뿌연 연기 같은 습기가 바다와 하늘 사이에 온통 덮여있었다. 노을이 지던 바다를 보며 그 앞에 앉아 술을 마시던 사람도 없었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사람도 없었다. 출입금지 구역의 계단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없었다. 빠르게 산책을 하는 사람이 나를 마주 보며 지나쳤다. 습기처럼 바람과 함께 뿌리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는 쓰지 않은 우산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사천에 다녀와서 며칠 지나지 않아 후배를 만났다. 점심을 먹고 선물 받은 물건을 트렁크에 넣다가 트렁크 뒤에서 굴러 다니던 컵라면을 보았다. 나는 컵라면을 먹지도 않으면서 샀었다. 그때는 그게 무언극의 무대처럼 거대한 장막으로 덮여있는 듯한 동네에서 현실감을 느껴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컵라면을 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이 되길 바랐는데 금방 기회가 온 것이 만족스러웠다. 컵라면을 후배에게 건네자 좋아하면서 받아갔다. 역시 라면은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라면을 떠나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트렁크를 닫았다. 드디어 나의 여행이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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