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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05. 2023

나 홀로 집에 영화를 찍을 뻔

 소설 같은 현실_달라스와 샌디에고

새벽부터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차로는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도시가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최종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예정이었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네 시간을 가면 나의 최종 목적지이다. 사시사철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바닷가로 가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야자수 밑에서 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공항에 도착해서 착륙을 하지 못했다. 하늘에 계속 떠있었다. 갑자기 안개가 너무 짙게 껴서 공항이 일시적으로 완전히 폐쇄되었다고 했다. 한참을 공중에서 기다리던 비행기가 다시 내가 왔던 곳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했다. 연료가 모자라서 거기서 다시 주유를 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한 시간이면 도착했어야 하는데 공중에서 세 시간을 머물다가 다시 돌아간다. 내가 비행기를 탔던 곳에서 차로 한 시간밖에 안 떨어진 곳으로 간다고 하니 머리가 멍하고 기가 막혔다. 


공항이랄 것도 공항이 아니랄 것도 이도저도 아닌 옥수수밭 가운데 허허벌판에서 비행기는 주유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왔던 곳을 향해서 날았다. 나는 이미 연결 비행기를 놓쳤다. 게다가 아침도 먹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네 시간 넘게 있었더니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배가 고파왔다.

드디어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게이트에 가지를 못했다. 한 시간 이상 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모든 비행기들이 일실적으로 몰려서 혼잡하다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서 드디어 게이트에 비행기가 도착했다. 한 시간 비행거리를 여섯 시간 동안 헤매다가 드디어 비행기 안을 빠져나왔다.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공항 안에 꽉 차있었다. 따뜻한 남쪽 바닷가에 이미 도착해 있을 시간에 나는 비행기 시간을 알아보고 표를 바꾸고 다시 기다려야 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또 네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밥을 먹을 곳도 앉아 있을 곳도 없었다. 딱 한 시간 공항이 전체적으로 폐쇄되었는데 난민 수용소가 따로 없었다. 바닥에 앉아서 벽을 기대고 잠을 자면서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밥을 먹고 간신히 자리를 잡아서 졸면서 기다렸다. 공항과 비행기에서만 열두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정신도 혼미하고 체력도 바닥이 되었다. 


드디어 내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되었다. 게이트를 찾아서 가서 표를 내밀고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시간보다는 이른 시간이어서 아직 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십 분쯤 혼자 멀뚱히 앉아있는데 하나둘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내 옆쪽의 자리에 와서 노부부가 앉았다.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 문득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가죽으로 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비행기는 어디로 가나요?" "달라스로 가지." 할아버지 옆에 있는 빨간 투피스를 입은 할머니가 친절하게 이야기해 줬다.


나는 부랴부랴 내 가방을 챙겨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표를 받는 직원에게 비행기를 잘못 탔다고 내 표를 달라고 했다. 직원이 표를 찾아 주었다. 그녀도 오늘 나처럼 공항과 비행기에서 열두 시간을 있어서 표의 목적지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를 태웠는지 아니면 원래 표를 받고 안 보는지 그녀가 살짝 원망스러웠다. 만약 그 할아버지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큰일 날 뻔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게이트를 찾아서 뛰었다. 


그날 밤늦게 샌디에고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이미 잠든 주택가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데 창문을 여니 벽난로 굴뚝에서 나온 나무 타는 냄새가 은은했다. 크리스마스의 향기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그때는 살짝 매캐한 연기 냄새가 눈물 나게 고맙고 반가웠다. 그날 밤은 침대에 누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 어떤 휴가를 보냈는지는 잘 기억이 없다. 


만약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나에게 영감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달라스에 가서 무척이나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냈을 것이다. 요즘은 그런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런 기회는 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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