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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08. 2023

나는 무엇이 되려 했을까?

소설 같은 현실_직장 동료인 나

언제부터 친구가 되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전 직장 동료의 사진이 인스타 그램에 나왔다. 해외로 이민 간지가 꽤 된 것 같은데 갑자기 한국의 병원에 입원한 사진이다. 내용을 읽어 보니 한국에 와서 다시 치료를 시작한다고 되어있다. 아무래도 가벼운 병 같지가 않았다. 거기 달린 댓글을 보니 나처럼 무슨 심각한 병인지 물어보는 친구가 있었다. 거기에 달린 답변은 하늘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한다고 달려있다. 생각해 보니 과거에도 그분은 꽤 유머가 있었다. 


많이 심각한 병인 것 같아서 짧게라도 메시지를 보내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색하고 너무 형식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올라온 사진에는 방사선 치료실이 나왔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퇴원을 했는지 꽃이 아름답다고 찍은 사진이 올라온다. 고향에 가서 옛날 직장에 찾아간 사진도 올라온다. 어쨌거나 퇴원을 하고 삶을 즐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일 년이 지났다. 다시 그분의 인스타그램에 그가 한국에 와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다행히 병원은 아니고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한국에 왔으면 한번 보자고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금방 답장이 왔다. 그렇게 해서 주말 낮에 거의 십 년 만에 직장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그날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런 계절이었다. 하늘은 너무 맑고 바람도 불지 않고 좋았다. 청계천 주변의 풀들은 앙상하게 가지만 남았고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사진을 찍었더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때문인지 별다른 매력을 찾을 길이 없었다. 사진을 두어 장 찍고 청계천을 지나 종각 앞으로 갔다.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변하지 않은 옛 동료가 서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했다. 얼굴을 보니 아픈 사람 같지가 않았다. 나는 오래전 회사 다닐 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아프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평양냉면과 만두를 먹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치료받던 이야기를 들었다. 가벼운 수술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20일간 혼수상태에 있었던 이야기였다. 이제는 다 나아서 그런지 이야기하는 내내 듣는 나도 말하는 동료도 영화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혼수상태였던 동안 꿨던 꿈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갔다. 


이층에는 아직 이른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한 명 밖에 없었다. 청계천을 내려다보면서 과거 우리가 일했던 회사와 거기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는 아주 오래전 일이라 이제 소설책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그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거웠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붐비는 지하철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과거에서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열차를 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문득 '그때의 나는 무엇이 되려 했을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일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그것을 기억해내려고 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이루고 있는 과거는 어떤 띠처럼 불쑥 튀어나온 부분을 죽 잡아당기면 나와 주변을 줄줄 끌고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기 있는 나는 나 같지가 않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가 왜 과거의 나를 잘 알지 못할까? 아마도 현재의 나는 어리석고 미성숙한데 고집만 센 과거의 나가 영 달갑지가 않아서 억지로 잊고 사는 것 일지도 모른다. 


감을 말리는 지금과 같은 초 가을의 계절이었다. 실에 길게 감들이 꿰어져 한옥의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사진은 인상 깊었다. 더 기억 남는 건 함께 올라온 칼럼이었다. 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닌 어느 작가가 회고하듯이 자기 이야기를 쓰다가 한 줄정도 시간은 아주 꿈처럼 정말 빠르게 간다고 적혀있었다. 꿈처럼 흐른다는 게 뭘까? 큰 의문을 가졌었다. 


아직도 의문이지만 과거의 나가 실감 나지 않으니 그게 그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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