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자유가 아니던가
베트남 패키지 여행을 갔다 온 후,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해외여행을 갔으나 비행기만 탔다 뿐이지 현지인은 커녕 현지식도 맛보지 못하고 한국 사람과 되도 않는 한국 음식을 먹고 다니는 '관광'에 지쳤었다. 해외여행- 내가 다녔던 '자유여행'-만의 자유로움이 없었다. 낯선 길거리 풍경, 낯선 언어만이 줄 수 있는 해방감, 굳이 나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단편적이고 얕은 만남, 일상과 다른 모습을 경험하는 것이 해외여행만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이번 바간-만달레이 여행을 마치고, 미얀마 여행에서 그런 자유로움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 통신 인프라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이 곳에서는 여행자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작게는 버스티켓 예약부터, 크게는 택시투어까지. 물론 직접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은 돈만 내면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직접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직접 하는 것은 힘이 들고, 상대적으로 누군가에게 시키면, 즉 돈을 쓰면 쉽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만큼 나의 자유는 사라진다.
만달레이는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없었다. 걸을 수 있을 만한 길도 없었고 걸을 수 있는 공기 상태도 아니었다. 양곤과 달리 만달레이는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었고 길거리에는 승용차와 오토바이만 가득했다. 째조마켓에는 수백대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었다. 도로는 포장이 덜 되었는지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복잡한 도로를 가진 만달레이 시내는 꽤 커서 걸어다니기 어려웠다.
양곤도 마찬가지지만, 만달레이 또한 개인택시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 않아 누구나 택시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면 바이크를 탄 사람들이 으레 '택시'를 외치곤 했다. 물론 그들의 바이크에는 택시를 뜻하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그냥 시간과 오토바이가 있는 사람들이 용돈벌이로 택시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무작정 오토바이 택시를 잡기엔 그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니 구글맵에 의지해 걷고 있으면 1분에 한번씩 택시 혹은 나의 출신지를 묻는 외침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렇게 흙먼지 드링킹에 짜증을 꾹꾹 눌러가며 무식하게 걷고 있자니 양곤은 정말 살기 좋은 도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돈을 아끼려는 여행자에게 이 곳은 지옥이라는 것도.
다음 날 도저히 오토바이 택시를 빌려 탈 엄두가 나지 않아 호텔에 이야기해 택시 한 대를 빌려 만달레이+근교 투어를 하기로 했다. 만달레이힐, 마하무니 파고다, 사가잉힐, 마하간디용 사원, 우베인브릿지를 합하여 4만짯이었고, 호텔에 들려 짐을 픽업한 다음 버스터미널에 가는 것까지 포함이었다. 기사는 영어를 잘했고, 불교에 대해 나름 진보적인 생각도 말해주며 우리에게 만달레이의 택시기사는 대부분 영어를 못한다고 나를 만나서 너희는 럭키하다는 얘기를 했다. 뭐 그러려니 하고 에어컨 시원하게 나오는 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가니 전날의 고생이 떠오르며 역시 돈을 쓰면 편안하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었다.
기사는 우리를 차례로 안내했고, 꾸또도 사원에서는 같이 내려 영어로 설명도 해 주었다.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매우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문화재를 설명하고 있는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하루 정도는 편하게 택시투어 하면서 설명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만달레이 문화재티켓을 안 사도 되는 루트로 안내해 주기도 했고, 그 때문에 골든팰리스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자 그와 비슷한 양식의 파고다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옥(jade)마켓에 데려가서도 굳이 사라 하지 않고 공방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마하무니 파고다에 가는 도중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호텔과 이야기했을 때는 사가잉힐은 포함이 안 되어 있었다며 4만 5천짯을 달라고 하는 거다. 이미 리셉션과 4만짯으로 협의했고 기사에게도 아침부터 계속 말을 했지만 이렇게 투어 중간에 느닷없이 돈을 더 달라고 하니까 어이가 없어서 우리의 Maximum Allowance는 4만이라고 이미 다 합의된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안그래도 큰 기사의 목소리가 더 커지며 너희같은 Rich People에게 5천짯 정도는 Small Money 아니냐면서 왜 그것을 못내느냐란 식으로 말했다.
이때부터 정말 화가 나서 그래 작은 돈 맞고 당신한테도 작은 돈인데 왜 4만에 해주지 않냐라고 따지니까 그냥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한다. 기사의 태도가 너무 뻔뻔하여 그냥 사가잉힐 제외하고 4만에 가기로 했다.
5천짯. 물론 작은 돈이다. 그러나 그것을 면전에 대고 언성을 높여가며 당당하게 요구하는 기사의 태도가 너무 기분이 나빠서 추가적으로 돈을 더 주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중간에 투어를 그만둘 수도 없는, 폐쇄적인 공간인 택시에서.
그렇게 언쟁을 하고 나니 기가 빠져버려서 마하무니 파고다는 보는둥 마는둥. 사가잉힐을 안 가게 되자 시간이 많이 남아서인지 기념품샵을 3~4군데 들렀다. 마땅히 살 만한 물건이 없어 사진만 몇 번 찍고 나왔으나 다행히 사라고 강요한다든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만달레이 시내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아마다뿌라에 위치한 마하간디용 수도원은 형형색색의 건물로 이루어진 스님들의 기숙사였다. 아침 10시에 탁발식을 하면 관광객들이 다 몰려나올 정도로 장관이라고 하지만 수도원 자체는 작고 조용했다. 때때로 공놀이를 하는 꼬마 승려, 불경 공부를 하는 10대 후반의 승려, 장삼을 말리고 있는 30대 정도의 승려 등을 볼 수 있었다.
우베인다리는 2시 반 부터 걷기 시작했다. 기사는 근처 파고다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하였고 일몰 때까지 오롯이 우리끼리만 우베인다리를 즐길 시간이 주어졌다.
일몰 때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1.2km의 목조다리를 천천히 걸었다. 다리는 폭도 좁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 찍을 때 조심해야 했으나 다리 자체는 매우 튼튼해 안정감이 있었다. 문제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양산을 썼음에도 피부가 따가웠다. 샌들을 신은 발목 부위는 심지어 껍질이 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선크림으로 응급처치를 하기도.
그러나 우베인 다리는 아름다웠다. 하늘은 맑았고, 호수는 잔잔하였고, 가끔 보이는 수목들,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 중간의 쉼터에 앉아있는 사람들, 개들까지도 이 정경의 평화로움에 기여하는 듯했다. 이전 여행들에서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하늘과 맞닿은 호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았다.
다리 건너편에는 파고다가 있었고, 그 파고다에서 4시 반까지 쉬었다. 그리고 다리로 다시 나오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내 휴대폰 배터리는 10%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장대한 광경은 쉬지않고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우기라서 다리 옆을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우베인 다리에서의 선셋을 찬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낮에 미친듯이 더웠던 건 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함이었으리라.
이쯤 되니 미얀마는 정말 밀당의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 그 갖은 고생을 했는데 막상 오니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에 넋이 나가서 차마 뭐라고 할 수 없는 느낌. 밀고 당기는게 너무 과격하지 않나. 우베인 다리에서의 일몰은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물론 택시로 돌아오자 다시 밀당은 시작되었다. 호텔로 무사히 도착해서 한숨 돌린 것도 잠시, 택시기사가 자기 피곤하다고 집에 가고 싶댄다. 버스터미널까지 가야 된다고 계속 말했고 당신도 이해하지 않았냐 했더니 아는데 피곤하댄다. 이 아저씨랑 더 이상 실갱이를 벌이다간 내 심신만 피로해질 것 같아 그냥 4만짯을 쥐어주며 보냈다. 그 때의 리액션이 가관. 팁을 바란건지 뭔지 oh exact price~하며 간다.
정말 다행히도, 호텔 직원이 배려해줘서 야간버스 타기 전 샤워도 하고 다른 택시기사를 불러서 무사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양곤이 싫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언제 끝날까 싶던 여행이었다. 이렇게 의무감, 부채감에 시달리면서 여행을 떠난 것도 처음이었다. 미얀마에 사는데 바간은 가봐야지, 혹은 미얀마에서 우베인다리를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 하는 류의 느낌들. 여행을 가고 싶어서 가는 건지 가지 않으면 안 될것 같아서 가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확실히, 여행하면서 주는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다. 여행 내내 고난과 역경이 이어졌고, 여행 하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 중간의, 그 찰나의 5분-10분의 절경이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는 힘이 되었고, -이미 진부해진 단어지만- 힐링이 되었다.
미얀마는 인연이 닿아야만 올 수 있는 나라라고 한다. 고생할 인연이라면 고생을, 멋진 비경에 감탄할 인연이라면 감탄을, 좋은 사람을 만날 인연이라면 만날 것이다. 그토록 고생을 했지만 지금 나는 다음 여행 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또한 양곤 생활에 더욱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여행을 하고 나면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생긴다. 그것 또한 여행의 매력요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