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바간-3

by Som

다음날 새벽 4시 반 무언가 홀린 듯이 일어나서 다시 불레디 사원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활동하는 동남아 사람들도 자는 시간, 도로에는 부지런한 여행객밖에 없었다. 5시 반에 불레디 사원 입구에 도착하자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대단하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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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구름에 가려 사진에서 보던 것만큼 멋있는 일출은 볼 수 없었다. 벌룬도 성수기에만 띄운다고 한다. 그래도 새벽 어스름 가득한 일출은 확실히 일몰의 쓸쓸함 혹은 장대함과는 다른 맛이 있다. 그렇게 사람 구경, 경치 구경, 서서히 바뀌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 숙소로 향했다. 6시 반부터 조식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조식을 먹고 한숨 자려 하였으나 역시 미얀마, 정시란 건 있을 수 없다. 결국 7시 다 되어 조식을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IMG_3557.JPG 점심은 그 이름도 유명한 '웨더스푼스'에서. 한국의 수제버거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맛이다.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늘 그렇듯, 선택의 순간은 매우 짧고 그 한순간의 선택은 꽤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친다. 식당을 나선 지 채 5분이 안 되어 비가 오기 시작했고, 한순간 쉐지공 파고다에서 비를 피할까? 란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으나, 무식한 여행자의 영혼이 ‘비 맞으면서 스쿠터 타는 것도 여행의 맛이지^^’라 외쳤고 나는 순순히 그를 따랐다. 그러나 비는 점점 많이 오기 시작했고 차에 탄 현지인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하자, 일단 되는대로 근처 사원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려 했다. 도착한 곳은 우빨리떼인이란, 승려의 계율 의식을 행하는 장소였다. 내부 벽화가 화려하다 들었으나 지진 피해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비가 잦아드는 것 같자 원래 루트대로 부 파야 쪽을 가려했으나 다시 비가 내려 결국 틸로민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제 그 사단이 있고 나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으나 별 수가 없었다. 그 앞에 다다른 찰나 어떤 스쿠터 무리가 반대편 샛길로 빠지길래 무언가 있나 싶어 따라갔지만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파고다 외에는 없었다. 좋았던 건 유명 명소가 아니라 따라붙는 사람들이 없었던 거. 결국 다시 틸로민로사원을 가서 내외부를 한참 빙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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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그 파고다가 그 파고다고 관광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숙소 침대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으나, 간신히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스쿠터를 몰았다. 그래서 도착한 사원이 마하보디 사원. 다행히 가는 도중에 비가 그쳤고, 탑 형식이라 내부는 작았으나 편히 쉴 수 있는 의자가 여러 개 있어 잠깐 쉴 수 있었다. 부처의 일생을 다룬 사원인지 탑 외부에 불상조각이 가득했고 꽃나무와 영어 간판이 있었다. 잠시 쉰 후 에야와디 강변에 위치한 부 파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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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난 후의 하늘은 훌륭하다. 특히나 미얀마의 하늘은 더. 단언컨대 미얀마의 팔 할은 하늘빨이라 말할 수 있다. 갓 비가 그쳐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바간의 하늘은 아름다웠고, 흙탕물에 가까운 에야와디 강조차도 그 장대함에 감탄을 자아냈다. 미얀마 국토를 관통하는 에야와디 강은 한강의 약 3배 정도는 되어 보였고, 강변을 따라 색색의 나룻배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분명 이 관광도시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생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IMG_3707.JPG 담마양지 파고다
IMG_3723.JPG 술라마니 파고다


비로 진흙이 된 길을 달려 도착한 담마양지 파고다, 술라마니 파고다 모두 지진으로 파손된 부분이 있어 천막이 둘러져 있었다. 벽화가 아름답다던 술라마니 파고다는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에서 보았을 때 있었던 아름다운 탑신부도 없어져 있었다. 유네스코 지역문화유산에 등재를 추진 중이던 바간과 미얀마 입장에선 허탈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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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간 Phythada 파고다. 담마양지와 술라마니 파고다도 메인 도로에서 진흙길을 달려 들어왔지만 이 곳은 훨씬 더 깊게 들어와야 한다. 유명한 곳인지 스쿠터, 픽업트럭, 택시, 버스 등 모든 교통수단들이 주차장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파고다 위에는 외국인보다 현지인이 더 많았다. 그리고 보는 바간의 전경은 가히 장관. 파고다가 안쪽에 위치한 탓에 시야 방해 없이 탁 트인 벌판과 그 위에 솟은 바간의 불탑들을 바라보자니 이틀간 몸고생 마음고생한 생각이 나 눈물이 날 거 같은 기분이었다. 360도 전부를 둘러봐도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소용돌이치는 구름은 시시각각으로 움직였다. 탑 위는 넓어서 불레디 파야처럼 조심스레 벽면을 짚으며 걷지 않아도 되었다. 사진을 수십 장 찍고 동영상도 대여섯 개 찍은 후, 조용히 내려왔다. 선셋을 보고 싶었지만 해가 진후 진흙길에서 바이크와 고군분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숙소로 돌아갔다.




여러 모로 힘든 여행이었으나, 바간에는 자유가 있었다. E-bike를 몰고 한적한 길을 달리며 눈에 띄는 사원에 들어가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비를 맞고 현지인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것도, 발을 헛디디면 떨어질 것 같은 파고다에 올라 일출, 일몰을 감상하는 것도, 미얀마에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경험일 것이다. 이 곳이 상업화되어가는 건 슬프지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적정선을 찾고 여행객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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