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레호수-1

기대를 버린 곳에서 대자연을 만나다

by Som

이번 여행은 이상하리만치 기대가 되지 않았었다. 별달리 준비해야 할 것도 많지 않았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어서 일정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었다. 저번 여행의 스트레스가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정은 매우 단순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새벽 6시쯤 낭쉐 마을 도착, 첫째 날 보트 투어, 둘째 날 호수 주변 마잉따욱 마을과 레드마운틴 와이너리를 다녀온 후, 다시 야간 버스로 양곤에 돌아오는 단순하고도 빡센 일정이었다.

보통 인레를 다녀올 때 일정에 같이 넣는 껄로 트레킹은 휴가 일정상, 체력상 생략했다.




IMG_4929.JPG 야간버스 안에서 찍은 달


야간 버스는 장장 12시간을 달려서 낭쉐에 도착했다. 쉽게 잠들지도 못했고 중간중간 깨기도 했으나 여행지로 향할 때의 첫 야간 버스는 설렘을 담고 있었다. 선잠을 자다 차체가 흔들리면 잠이 깨어 새벽 감성을 즐기다 다시 잠이 들곤 했다. 그때 쓴 메모를 보면 지금이야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엔 꽤나 오랜만에 느끼는 새벽 감성 자체가 즐거웠던 듯했다.



달은 버스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인다.
달이 움직일 때마다 하늘도 빙그르르 돈다.

어렸을 적엔 달이 우리 차를 따라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달이 하늘에 수놓아져 있다.



그렇게 버스는 이른 새벽 낭쉐에 도착했고, 걸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호텔은 선착장 바로 근처에 위치했고, 다행히 얼리 체크인이 가능해서 씻고 보트 투어를 하러 나갔다.


IMG_4932.JPG 7시 반의 낭쉐 선착장. 이른 아침이라 덜 북적거린 듯하다


셰어 하자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홀로 보트를 타게 되었다. 모터보트는 생각보다 빨랐고, 시끄러웠으나 그래서 오히려 더 해방감이 넘쳤다. 약간 춥다 싶을 정도로 바람을 가르는 보트에서 나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인레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IMG_4982.JPG

이런 대자연을 접할 때마다 책, 사진, 동영상, 글 등 모든 종류의 간접경험은 간접경험일 뿐이라는 것을 느낀다. 남이 좋다고 하는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하고 좋음을 느끼는 것은 천양지차다. 직접 본 인레호수는 광활했다.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호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마을이 보일 뿐이었다. 선착장을 나올 때 끼어있던 구름은 점차 걷혔고, 잔잔한 호수 표면에 점점 햇살이 비쳐나갔다. 거대한 하늘과 호수가 맞닿아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IMG_5054.JPG


보트는 호수 북쪽의 낭쉐 마을부터 거대한 호수 중심부를 지나 남쪽의 마을로 향했다. 수상가옥과 기념품샵은 남쪽 마을에 몰려있는 듯했다. 보트는 마을 사이사이의 좁은 길과 큰 길을 가로지르며 유적지와 아트샵들을 들렀다. 보트 기사는 달리 여기가 어딘지 설명을 해 주지 않아 여기가 어느 곳인지는 사전에 가이드북으로 본 정보를 통해 유추해야 했다. 이전에 영어 하는 택시기사에 당한 적이 있어서인지 이 편이 정신건강에는 훨씬 이로웠다.


IMG_5095.JPG 인데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적지. 아직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도저히 유적지의 느낌이 들지 않았던 파웅도우 파고다. 미얀마인들에게 파고다란 절도 하고 식사도 하며 친구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 혹은 시장 같다.
IMG_5233.JPG
IMG_5198.JPG
IMG_5189.JPG

인데인 유적지는 정글 같은 흙탕물을 한참 뚫고 가야 나온다. 보트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더군다나 길을 헤매 돌아가느라 체력이 방전되어 버렸다. 통로를 끝없이 따라가야 폐허와도 같은 스투파들이 나온다. 핸드폰 배터리도 없거니와 체력이 방전되어 버려서 그 많은 스투파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내려와 아쉽다.


IMG_5251.JPG 점핑 캣 모나스트리, 나빼짜웅. 이때쯤 잠을 못 자서 두통도 오고 쓰러질 것 같아서 절하는 척하고 앉아서 쉬었다. 고양이는 몇 마리 없었다.


IMG_5243.JPG
IMG_5023.JPG
IMG_5144.JPG
IMG_5152.JPG

보트는 유적지 말고도 여러 기념품샵을 들렀다. 은세공샵, 연꽃에서 실을 짜 직물을 만드는 실크샵, 잎담배, 마지막으로 목이 긴 여인이 있는 수공예샵에 들렀다. 들러보기만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으나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는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았다. 조그만 건물에 관광객은 나 혼자고 구석에 링을 낀 여인 세 명이 직물을 짜고 있었다. 내가 쭈뼛대자 구석의 남자 직원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이 사람들을 상품 취급한다는 느낌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서 적당히 둘러보다 나왔다. 그 세 명 중 한 명을 여행 후기에서 본 듯한 기분이 들어 찜찜했다.



원래 호텔과는 선셋까지 보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지만, 몸 컨디션상 그때까지 버틸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내가 기념품샵들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 4시 정도에 투어는 끝났다. 호텔과 이야기된 2만짯을 뱃사공에게 주려 했는데, 웬 할아버지가 나타나더니 인데인, 마켓 포함 투어는 25,000짯이라며 항의를 했다. 나는 마켓은 가지 않았다며 호텔과 이미 합의된 사항이라 따졌고, 결국 그 할아버지는 호텔까지 따라와 리셉션과 이야기를 마친 후 2만짯을 받아갔다. 내 2만짯이 하루 종일 고생한 뱃사공에게 돌아갔는지는 미지수다. 여러 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그쪽의 룰이 있겠지. 나이도 어려 보이던 사공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첫째 날은 마무리. 내용은 없지만 사진은 많이 남아서 인레도 두 편으로 나눠서 업로드. 마지막으로 인레에서 건진 좋은 색감의 사진들.


IMG_5150.JPG 삐걱대는 목재다리 위 매달려있던 화분들
IMG_5273.JPG 비현실적인 무지개와 구름들, 그 아래 형형색색의 보트들
IMG_5286.JPG 해가 서쪽으로 살짝 기울었을 때 수상 토마토 밭 사이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