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의 삶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국제개발협력'- 엄청 거창해보이나 뭘 하는지 모를 이 학문을 접한 건 학부 2학년 시절 들었던 교양에서였다. 그 수업은 P/F수업으로 기말만 어찌저찌 보면 Pass를 얻을 수 있었고, 학기가 끝나면 2주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등으로 해외봉사활동을 가는 알짜배기 수업으로 알음알음 소문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수강할 시절부터 일반 수업으로 바뀌고, 주최측-KOICA-의 사정으로 해외봉사도 무산되면서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2학점짜리 일반교양이 되어버렸다. 그 후 학점도 신통치 않게 나오면서 완전히 기억에서 잊혀졌었다.
그러나 이 케케묵은 '국제개발협력'이란 학문에 대한 기억은 약 N년 후 현재 회사의 기금부문에 지원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한국 유일의 유상원조기관에서 인턴으로써 일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국제개발협력이란 무엇이냐 -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1950년대 UN, 미국의 유상원조가 그 비슷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 원조(Aid)를 뜻하며, 약 5개월간 여의도에서 일하며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을 목적으로 정치, 경제, 행정, 법, 교육, 보건, 환경적 시스템을 개선시키는 전반적 활동을 말한다. 국무조정실에서 관리하는 ODAkorea 홈페이지의 정의에 따르면, 국제개발협력이란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개발도상국-개발도상국 간, 또는 개발도상국 내에 존재하는 개발 및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 해결을 통해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행동을 의미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할 수 없다. 나도 5개월간 관련 기관에서 일했으나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으니. 국제개발학 또는 국제개발협력학은 사회복지학과에서 다루거나 국제관계학에서 조금 다룰 뿐 학부 수준에서는 하나의 학과로써 배울 수 없으며, 대학원 수준까지 가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직장에도, 무상원조 기관에도 기본 석사 출신들이 많다. 그렇다고 KOICA에서 발행한 개발학강의라던가, 원조 관련 책을 읽어보면 '개발학'이 당최 뭐하는 학문인지를 종잡을 수 없다. 경제를 베이스로 하여 정치, 법, 거버넌스, 환경, 교육, 보건, 인권까지 굉장히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다 보니 깊이가 얇은 것도 같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도 같다. 과연 각국들이 책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Good Will로써 개발협력을 하려 하는 걸까?
이런 여러가지 의문점을 안고 미얀마에 와 보니, 확연히 알 것 같았다.
국제개발학은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일 수밖에 없다는 걸.
주말을 맞이하여 양곤 순환열차를 탔다. 양곤 중앙역에서 출발하여 약 3시간 동안 시내 외곽을 도는 지역열차였다. 역이 초라한 거, 열차가 느린 거, 사람이 많은 거야 그러려니 했지만,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여기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선로가 다 녹슬어 삐걱거리는 건 둘째치고, 선로가 다니는 땅에서 약 30센티미터만 벗어나면 곧바로 물이었다. 그 물을 머금고 작물이 자라고 있었고, 물 위엔 녹조가 가득했다. 물은 물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더러웠다. 물이라기보다는 '오수'가 가까운 표현 같았다. 그 오수가 하천마냥 흐르고 있는 곳도 있고, 그냥 고여있는 곳도 있었다. 오수 위에는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허리까지 오는 오수를 헤집고 사람들이 작물 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선로 옆에는 쓰레기더미가 가득했다. 선로의 왼쪽엔 판잣집들이, 선로의 오른쪽엔 쓰레기더미가 있었다. 순환열차가 도는 3시간 동안, 거의 항상 판잣집이 열차로부터 3m 안쪽에 있었다.
문득 여기가 1인당 GDP 1200불의 최빈국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내가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개발은 다학제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수 문제는 수질오염뿐만 아니라 토양오염까지 같이 불러오고, 주변의 악취 또한 야기한다. 오수를 사용한 작물은 그 작물을 먹고 사는 이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지도 모른다. 이들을 판잣집이 아닌 뭍으로 올려주기 위해서는 쓰레기처리시설-환경 개선-이 필요하고,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교육이 필수다. 여러 학문이 모여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을 논하는 것이 개발인 것이다.
가끔 역 바깥으로 혹은 선로 위에서 시장이 펼쳐질 때가 있는데, 사람들이 선로의 쓰레기를 뒤편으로 둔 채 날고기, 날생선을 그냥 팔고 있었다. 혼잣말로 '저건 좀 아니다'라고 읊조렸으나, 한편으론 '내가 한국의 기준을 바탕으로 이 사람들의 삶을 평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방식이 다른데, 나의 기준을 가지고 멋대로 개발시켜 주겠다며 이 사람들의 생활을 휘저어놓을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
아직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미얀마에 있는 4개월간, 보고 듣고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며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양곤 순환열차 3시간은 생각보다는 짧게 느껴졌다. 멍때리며 생각해서 그런가. 미얀마에서 국제개발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 로컬 중의 상로컬 places, people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