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택시

문득 이방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by Som

양곤의 택시는 많다. 정말 많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도로의 절반 정도는 택시다.

양곤 시내는 오토바이 주행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대중교통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양곤에서 택시가 많은 건 필연적인 방향일수도. 게다가 미얀마의 최저 임금은 하루에 3600짯. 약 3600원이다.(신정부 들어서고 4100짯 정도로 올랐다고 들었다) 택시비가 미니멈 1500짯, 통상 2~3천짯 정도 하니, 승객을 하루에 두번만 태워도 수지가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니 많을 수밖에.



택시비는 한국에 비하면 싼 편이다. 가까운 거리는 천오백원~이천원, 차로 20분정도 가야하는 먼 거리도 3천원 정도면 간다. 단지 탈 때마다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성가실 뿐.

협상을 해서 타면 좋은 점은 있다. 일단 가격을 정하고 타면, 아무리 길이 막혀서 오래 걸린다고 해도 더 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기사가 더 내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미 합의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택시비가 아무리 싸고 천원 이천원이라지만, 퇴근하고 다른 곳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올라 치면 기본적으로 교통비가 하루에 만원이 넘어가다 보니 여행자신분이 아닌 양곤에 사는 사람으로써 단돈 500원 1000원이라도 깎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일단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높게 부른다. 2천에 갈 거리를 4천에 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면 어쩔 때는 애교를 부리며, 어쩔 때는 단호하게 말하며 가격을 깎는다. 이게 한두번도 아니고 하루에 두번씩 꾸준히 이어가다보니 가끔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아껴야 하냐는 자조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루한 인턴. 펑펑 쓰다가는 남는 것이 없다. 더군다나 미얀마 물가를 고려하면...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껴야 살 수 있다.

IMG_2682.JPG 양곤의 흔한 퇴근길 교통정체


유난히 교통정체가 심해 보이던 날 아침, 출근길에 택시를 잡는데 회사 건물 이름을 말했더니 3천을 부르더라. 통상 1500~2000에 가기 때문에 깎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보냈는데, 그 기사가 아쉬웠는지 차를 세우더니 타라고 하였다. 그 기사는 꽤 젊은 편이었고 차의 외관도 깔끔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별 의심없이 탔다. 그런데 막히지 않는 길로 돌아간다고 하기엔 꽤 심하게 돌아가는 것 같길래 지도를 보여주며 다시 한번 회사 건물 이름을 말했더니, 갑자기 미얀마어로 뭐라뭐라하면서 차를 세웠다. 알고보니 회사 건물 이름과 비슷한 다른 병원으로 착각했던 것. 그러나 우리는 영어로 말하고, 저쪽은 우리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으니 쌍방으로 답답하고 열이 오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우리는 미얀마인 숙소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건네받은 택시기사는 언성을 높여가며 통화를 했다. 내심 핸드폰을 던져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다시 전화를 건네받자, 매니저는 나에게 이 기사가 너무 예의가 없으니 돈을 주지 말고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라고 했다. 순간 잠시 돈을 주지 않아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긴 하였으나, 우리도 열이 뻗쳐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언대로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내리더니, 정말 무시무시하게 위협적인 얼굴로 돈을 달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둘다 서있었고, 기사와 나와의 거리는 정말 가까웠고, 정말 한 대 칠 것거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냥 돈을 주고, 다른 택시를 잡고 회사에 왔다. 심지어 다른 택시를 잡아서 회사로 올 때도 원래 2천에 협의하고 왔는데 기사가 거스름돈이 없어 결국 2600을 내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니 무슨 배짱으로 돈을 안 내고 내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부소장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미얀마 사람들은 평소에는 순한 듯이 보이다가도, 자존심을 건드리면 정말 무섭게 돌변한다고 한다. 버마족이 괜히 동남아의 정복왕이 아니라면서. 기사 딴에는 본인 입장에서 외국인이고, 여자고, 본인보다 어린 듯한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기에) 길을 잘못 알려주고 돈을 안 내고 내리려 하니 자기가 생각하는 자존심의 마지노선을 건드린 것.




미얀마에 살고 있지만, 한국 회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미얀마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다. 사실 택시기사가 만나는 미얀마인의 80%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일을 한 번 겪고 나니 내가 외국인으로써, 이방인으로써 여기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통감하게 된다. 그게 미얀마든 어디든, 이방인으로써 살아간다는 느낌은 썩 달갑지 않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필요한 때에 도움을 못 받을 확률이 높고, 그 비참한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내 편이 없다는 절절한 외로움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IMG_2617.JPG 하늘은 무심하게도 예쁘다


3년 전쯤 독일에 살았던 적이 있다. 작은 학생도시여서 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생활환경은 확연하게 다르지만 가끔 그 때와 비슷한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느껴지는 시선, 언어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답답함, 아무리 안전하다 하나 항상 경계를 해야 하는 밤거리,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 개인이 아닌 '외국인' 혹은 '한국인'으로 인식하는 것. 가끔 찾아오는 무시무시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비빌 언덕'을 찾을 때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어찌하나. 가끔 찾아오는 그 외로움마저도 일상생활로 만드는 것이 적응이다. 내가 이방인임을 인지하고 어느 정도 그러려니-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심신이 평화롭다.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택시를 타봤다. 양곤국립박물관에서 집으로 가는데, 2천짯으로 갈 거리를 4천짯에 부르더라. 내심 정말 어이없었으나, 혼자기도 하고 Tourist Place라는 점을 감안하여 3천짯으로 협상하고 택시에 탔더니 정말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정확한 위치에 내렸다. 그렇다. 돈을 아끼지 않으면 마음이 고생할 일은 없다. 양곤에 온 지 3주차. 아직도 '적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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