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resh를 위해 양곤을 떠난다
흔히들 미얀마가 시시각각 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사는 사람들에겐 변화란 매우 미미하거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미얀마에 그렇게 많은 기대를 품고 온 것은 아니었으나, 생각보다도 양곤은 할 것, 볼 것이 없었다. 이제 막 개방을 한 터라 외국인들이 갈 만한 카페나 바가 많은 편도 아니고 양곤이 관광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투어리스트로써 볼 만한 곳도 많이 없다. 양곤에 산지 2주차에 보족마켓, 깐도지, 인야호수, 순환열차, 쉐다곤파고다까지 다녀오고 나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다. 그나마 짜내고 국립박물관과 트립어드바이저에 나온 카페 등등을 가보았지만 대도시답지 않은 지루함은 쌓여만 갔다.
그래서 양곤에 온지 한달, 급작스런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9월 13일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12일 하루 휴가를 쓰고 바간-만달레이 3박 5일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의 이유는 간단. 양곤을 떠나고 싶어서.
양곤이 뭐가 어때서? 어떤데? 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떠나, 4주간 양곤에 살며 느낀 소소한 몇 가지.
1. 물가
미얀마가 최빈국이기는 하나, 물가는 절대 싸지 않다.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을 제외한다고 쳐도, 길거리음식이 아닌 제대로 된 식당에서 밥을 먹을라손 치면 4~5천짯은 깨진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으려고 하면 만짯은 줘야 한다. 거의 서울과 비슷하다. 미얀마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은 500짯 이내라고 하나, 그건 위생상태는 차치하고 별로 먹고싶지가 않다.
최근에는 꽤 descent한 현지 식당, 혹은 프랜차이즈 식당을 몇개 찾아서 볶음밥, 볶음면 정도는 2~3천원 내에 먹고 다니긴 한다.
시계 방향으로 싱가폴 체인인 야쿤토스트에서 파는 치킨&라이스(5천짯), 트립어드바이저 1위에 빛나는 랑군 티하우스의 초콜릿사모사와 라펫예 (총 만짯정도), 술레파고다 옆의 브런치 소사이어티의 똠양파스타(총 만짯정도), 현지 프랜차이즈식당 미스터쉐프의 steamed rice(4~5천짯).
또 귀찮은 것이 여기는 5%의 세금이 기본적으로 붙고, 어떤 곳은 서비스차지를 아예 안받는 곳부터 5%받는 곳, 10%받는 곳까지 있기 때문에 항상 메뉴판에 적힌 금액보다 10~15%는 더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며 주문해야 한다.
집값.. 집값은 '양곤 집값' 혹은 '양곤 호텔' 치면 금방 알듯..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숙소에 내는 방값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면 방 두개 딸린 오피스텔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2. 불교
이 나라 사람들의 90%는 불교신자다. 택시를 타면 운전석 가운데에 꽃과 미니불상이 올려진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술레파고다를 정면으로 볼 때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합장하는 기사도 있었다. 어느 파고다에 가든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다. 이 나라에서 종교는 일상이다.
3. 역사
여행책을 제외하면, 미얀마를 다룬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있는 책들에서도 미얀마 역사에 대한 정보는 대개 식민지시절 이후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약 100년 남짓의 식민지 시기, 혹은 그 이후 이어진 50년간의 군부통치가 현재의 미얀마 정치, 경제, 문화를 있게 한 중요한 부분일 수 있으나, 그 이전 몇천년의 시기가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미얀마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EBS다큐프라임 '천불천탑의 신비, 미얀마'를 추천한다.
4. 금융
미얀마에 오기 전 한국에서 미얀마 사전 정보를 찾아볼 때, 시내에 ATM은 꿈도 꾸지 말고 공항에서 환전을 해야 하며 반드시 빳빳한 100달러 신권을 준비해야 한다는 정보를 많이 접했다. 그러나 막상 오니 시내에는 각종 은행과 ATM들이 즐비했다. 은행에 가면 정말 좋은 환율로 환전을 해준다. 이런 면에서 미얀마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요즘은 정말 빠른 속도로 환율이 상승하고 있다. 여행 전에는 달러당 1215짯이었던 환율이 2주만에 1230짯이 되어 있었다.)
4. Mall
동남아는 쇼핑몰이 많다. 한낮이 매우 덥기 때문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몰로 사람들이 모이곤 하는데, 문제는 내가 쇼핑몰에서 흥미를 느끼거나 쇼핑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 게다가 여기 옷이 질에 비해 절대 싼 편이 아니다. 지오다노 기본 티가 하나에 만짯정도 하고 일반 블라우스도 3만~4만짯 정도 하니 한국과 비슷하거나 살짝 더 비싼 수준이다. 그러나 지인의 말로는 싱가폴 브랜드는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싸다고 하는데 전반적으로 몰 전체가 약간 10년전 동대문시장 느낌이라 뭘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5. 한국 기업
삼성, LG야 어느 국가에나 다 있다지만, 유독 정말 의외의 상품들이 미얀마에 진출해있는 것을 보면 가끔 흠칫하곤 한다. 한인마트가 아닌 일반 마트에서도 다시다, 김, 라면 등은 흔히 볼 수 있고 송월타월같이 정말 의외의 미얀마진출 브랜드도 있다. 그리고 여기도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에뛰드, 홀리카홀리카 등 웬만한 로드샵 브랜드는 다 있으나 가격이 한국과 똑같다. 의류는 지오다노만 본 것 같다.
가끔 1시 언저리에 은행을 가보면, 아침드라마 류의 한국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어가 그대로 나오고 그 위에 미얀마어 자막이 덧대어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약간 한국을 Fancy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아주 살짝씩 받는다. 유가네가 진출한건 뭐 그럴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Korean을 붙인다던가, 한국 버스를 수입할 수는 있지만 저런 광고판 같은 걸 그대로 붙인 채 다닌다던가 하는 것들.
참고로 길거리의 승용차들은 우측핸들의 일본, 태국산 중고차가 많으나 현재 양곤시에서 우측핸들차량수입을 전면 금지하여 한국버스가 수출면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택시 광고가 붙어있을 정도면 나름 최신 중고차인셈. 광고라던가 한국어 표지를 그대로 붙이고 다니는 이유는 더 '있어보이기' 때문이라 카더라. 물론 이건 일본차든 미국차든 같다. 간지는 역시 양간지.
6. 음악
택시기사들이 라디오를 틀어놔서 종종 미얀마 대중음악을 듣곤 한다. 음악이 놀랍도록 한국노래와 비슷하다. 심지어 길가다가 제빵왕김탁구 ost를 들은 적도 있다. 물론 미얀마어였는데 정식 리메이크를 한건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녹음된건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완전 2016년 top 100에 있을 법한 노래는 어니고, 10년전 엠씨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 류의 노래가 대히트쳤을 때의 그 풍이다. 랩이 깔리고 후렴은 여성보컬이 부르는 식. 그리고 비트랑 노래 전개방식이 정말 흡사해서 나쁘지 않다. 이런 데서 한류의 영향을 받은 건가 싶기도 하고.
참고로 길가다가 엑소모자, 엑소 티셔츠, 엑소 멤버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런 걸 다 남자들이 입고 다녀서 한류의 영향인건지 그냥 뜻도 모르고 입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5. 일상
사실 양곤이 지루하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이다. 생각보다 해외사무소의 역할은 크지 않았고, 크지 않은 역할 중에서도 인턴이 하는 일이란 너무나 미미하기 짝이 없다. 여의도에서도 그랬지만, 팀이 바빠질 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더 없어진다. 인턴에게 일을 주는 것조차 일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바빴고, 나의 일상은 정형화되어갔다. Dynamic, exciting한 하루하루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무실에서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데 퇴근하고 나서도 별달리 할 것이 마땅치 않으니 이 곳 생활에 더욱 실망을 했던 듯하다. 자기계발, 언어공부라는 명목 하에 책을 읽고 미드일드를 보지만 9월이 시작되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뜨는 채용공고를 보며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건가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버텨봤지만 3주차 되는 주말을 헛되이 지내버리고 나자 급하게 여행을 결정했고, 원래 바간만 다녀오려던 계획은 휴가를 하루 더 써서 금요일 밤 야간버스 출발, 수요일 새벽 야간버스로 도착하는 3박 5일의 빡센 일정이 되었다. 잠시라도 지루한 양곤의 일상을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또 다른 미얀마를 느끼며 Refresh를 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을 준비하는 일주일간은 여러 후기를 읽고, 계획을 짜며 나름 다이나믹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3박 5일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양곤에 산다는 것에 감사하고 남은 양곤 라이프를 더 알차게 즐기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것도 나름 리프레쉬라면 리프레쉬지.
다음 두 차례에 걸친 포스팅은 아마 사진과 짤막한 감상 위주가 될 것 같다. 정말 심신이 고생을 많이 했으나, 나는 벌써 인레 여행기를 찾아보고 있다. 어떤 여행이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항상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