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그만 읽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사실, 나는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단지 시간이 날 때 책을 읽는 것뿐이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은 내가 책벌레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궁색하지만 이렇게 반문하곤 한다. "책 안 읽으면 뭐 하는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배우 손석구)가 염미정(배우 김지원)으로부터 "왜 매일 술 마셔요?"라는 말에 "아니면 뭐 하는데?"라고 반문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의 말속에는 묘한 비판이 담겨 있다는 것을.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으면서 너는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 책만 읽어서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너무 관념적이 된 것이 아니냐?'는 등의 의심 말이다. 모두 맞는 지적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삶이 극적으로 바뀌거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때로 책 속 세상으로 도피해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거나 나만의 세계에 갇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 문제인 것이지 책 때문은 아니다. 조금 더 변명하자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나를 변화시키거나 무언가 크게 달라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롤리타>에서 말했듯, 책에서 어떤 교훈이나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책 속 인물들의 잘못과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독서를 통해 얻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물론 책에서 배운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 하러 책을 읽는 거야?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어쩔 수 없지만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책 안 읽으면 뭘 해?"라는 대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책이라도 읽어서 이 정도라고. 책을 통해 세상과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볼멘소리라도 하고 싶지만 늘 입안에서 맴돌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