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영원'을 시간이 무한히 지속된다는 뜻이 아니라 무시간성으로 받아들인다면, 영원한 삶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쉽지 않은 문장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영원'은 영구히 지속된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없는 현재로서 언제나 현존하고 있는 무엇이라는 뜻이다. 즉, 무한한 시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언제나 존재하는 무시간성이다. 철학적으로 깊이가 있는 문장이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영원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다.
현재와 '영원'은 얼핏 보면 상반된 개념처럼 보인다. 영원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 현재에 집중하면 영원을 볼 수 없다. 그런데 그 영원이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니,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없다. 종교는 천국과 지옥 같은 영원의 장소를 상상하며 죽음 이후를 언급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영원히 존재할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만약 우리에게 이 유한한 인생이 전부라면 그리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면,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는다면, 지금이라도 재밌게 즐기자고 흥청망청 사는 것이 당연해 보일지도 모른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도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오늘 일도 모르는데 내일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물며 영원이라니, 선뜻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영원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과 영원을 믿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오히려 현재를 충실히 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영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원을 바라보고 믿기 때문에 이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현재는 영원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할 때 단순히 쾌락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지금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만 '영원'이라는 개념이 의미를 갖는다. 현재를 제대로 살지 않으면 '영원'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은 현재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물론 그 현재는 나답게, 무엇보다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충만한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