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너무 피곤해서 평소 거의 마시지 않던 에너지 음료를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 종일 덜 피곤했다. 문제는 그다음.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밸런스가 깨진 것 같은 것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몸은 쉬고 싶어 하는데, 정신은 말똥말똥하게 깨어서 분주하게 뭘 하는 느낌이랄까.
아주 오래전, 거의 매주 주말에 등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무척 피곤해서 오늘은 정상까지 가지 말고 적당한 곳에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주변 사람들이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서 마신 적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던 정상을, 평소 같으면 여러 번 쉬면서 힘겹게 올라갔을 텐데 그날따라 쉬지 않고 한달음에 올라갔다. 그 이후로 종종 피곤하면 에너지 음료를 마셨는데, 건강에 썩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끊었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사무실에서 에너지 음료를 발견하고 그때 생각이 나서 마시게 되었던 거다. 처음에는 이거 먹고 괜히 오늘 밤 잠 못 자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한 마음에 망설였다. 안 그래도 요즘 빨리 잠들지 못하고 새벽에 자꾸 깨는데, 불난데 기름을 부은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캔쯤이야 하고 마셨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잠을 자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피곤함을 물리치려고 마신 음료가 오히려 피곤함을 더해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뭘 먹고 마셔서 피곤함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피곤할 때는 쉬고 맑은 정신에 일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춰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인위적인 각성효과는 잠깐 반짝할지 몰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쉼을 원하는데 쉬지 못해서 몸이 더 축날 수 있다. 미래에 쓸 에너지를 앞당겨 쓰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삶이 그렇게 원칙만 따지고 살 수 있는가.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하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할 상황이라면 잘 수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우리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젠 피곤하다고 에너지 드링크 마시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오늘이 12월 8일, 11월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세월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