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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29. 2022

태엽을 감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도

무라카미 하루키 / 노르웨이의 숲

가끔 견디기 힘든 외로움에 젖을 때도 있지만, 난 대체로 건강하게 잘 지내. 네가 매일 아침 새를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 나의 태엽을 감아. 침대에서 나와 이를 닦고 수염을 깎고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 현관을 나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난 대체로 서른여섯 번 정도 끼륵, 끼륵 태엽을 감지. 자, 오늘도 하루를 잘 살아 보자고 하면서.


너를 만날 수 없는 것이 정말 괴롭지만, 만일 네가 없었더라면 나의 도쿄 생활은 정말 엉망이 되어 버렸을 거야.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 너를 생각하기에, 자, 이제 태엽을 감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거지. 네가 거기서 열심히 살듯이 나도 여기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오늘은 일요일이라 태엽을 감지 않는 아침이야. 일요일 오후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리고 고독해. 혼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지. 네가 도쿄에 있었을 즈음 일요일에 둘이서 걷던 길을 하나하나 떠올릴 때도 있어. 네가 입었던 옷도 아주 또렷이 떠올라. 일요일 오후에 난 정말 온갖 것들을 떠올리곤 해.


                         <무라카미 하루키 _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여자친구 나오코에게 쓴 편지 중의 일부다. 이 편지를 인용한 건, 와타나베의 일요일이 나의 일요일과 무척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지난 추억을 생각하고, 집 근처를 산책하고 음악을 듣는 하루.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날, 딱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적적한 그런 날이 내가 보내는 일요일이고, 와타나베가 보냈던 일요일이기도 하다.


와타나베는 말한다. '불현듯 앞으로 이런 일요일을 도대체 몇십 번 몇백 번 반복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이라고 나는 입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일요일에 나는 태엽을 감지 않는다.'고. (노르웨이의 숲, 336 - 337쪽)




주중에는 주말이 돌아오면 이런저런 걸 해야지, 잘 쉬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알찬 시간을 보내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그 다짐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마치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는 모양새와 닮았다. 그럴수록 잠은 더 오지 않는 건데도.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일요일을 보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님도 사느라고 바쁘셨고 따라서 우리 집은 주말에 여가 생활을 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나도 바쁘게 살아야 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언제나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일요일이라고 예외가 없었고,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에도 제대로 쉴 틈을 내기 어려웠다. 불쌍한 인생이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친 후 그 시절보다 비교적 여유가 있어진 지금, 여전히 그때의 습관과 관성을 쫓아 계획대로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고 마는 것이다.


쉬는 날인데도 그동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지금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이건 성실한 삶과는 무관한 거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살지 말라는 핀잔을 듣곤 하는데 맞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요일은 평소 꼼꼼하게 감아야 했던 태엽을 감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루틴한 일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아침 일찍 태엽을 감아야 하지만(이제는 태엽 대신 알람을 설정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말까지 그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만 여전히 주말에도 태엽을 감으며 주중의 삶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도 시계 알람 때문에 이른 아침에 깨고 말았다.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알람을 꺼놓는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잠이라도 더 자면 몸이라도 가뿐해서 주말을 잘 보낼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어나서 책을 보자고 마음먹지만, 막상 책상에 앉으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도 시간이 많거나 마음이 느긋해지면 잘 읽히지 않는 거였다. 독서가 습관처럼 되어 버린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라는 사람은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려야 비로소 발동이 걸리는 건가 보다, 하고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주말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빈둥거릴 수 있으니 그건 나쁘지 않다. 이제는 뭘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그만인 하루가 나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하얀 도화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붓을 든 화가에게 달렸듯,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는 나한테 달렸다. 그러니 잘못 보낸 책임도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이 글을 썼던 지난 5월 1일.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매번 맞는 새로운 달인데도, 새로움이 느껴지기보다는 뭔가 찜찜하다. 한 해의 거의 절반이 갔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시간에 무력하게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고 한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아무래도 새롭게 느끼지 못하는 나의 무뎌짐이 문제다.

일요일 오후, 조선의 풍전등화의 운명 앞에 이순신 장군이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승리의 의욕을 불태웠듯, 나에겐 반나절 이상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의 아닌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런다고 잘 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 _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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