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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나는 무엇을 위해 뜨거워지는가

by 서영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의 자서전 프롤로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그의 생을 관통하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간의 고통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이 열정들은 마치 거센 바람처럼 나를 이리저리로, 고뇌의 깊은 바다로, 절망의 벼랑으로 휘몰았다."


사랑, 지식 그리고 고통에 대한 연민. 러셀은 이 세 가지 열정이 자신의 인생을 지배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이 남달랐던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인생의 모토로 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취 여부는 그다음 문제다. 살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다 보면, 세 가지 중 한두 가지는 소홀해지게 마련이다. 아니면 나처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 수도 있다. 러셀이 일평생 추구했던 가치들을 마주하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동안 어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해야 하는지조차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상황에 휘둘렸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추구해야 할 가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고뇌는 짧았고 절망은 필연이었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러셀처럼 열정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런 나 자신의 실상이었다.


마치 죽은 러셀이 나를 향해 묻는 것 같았다. '도대체 네 삶을 이끄는 열정은 무엇이냐?' 삶을 이끄는 열정은 명예나 부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나를 넘어선 더 큰 목표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해야 하고, 그 열정을 나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하는 외연을 가져야 한다. 내가 죽으면 그 열정도 의미를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2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 삶을 이끄는 열정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나는 그 열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얼마나 진심으로 고뇌했는지를.


열정이 없으면 절망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절망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노인이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듯, 우리도 열정과 사랑, 연민을 잃어버렸다면 인간으로서 사는 의미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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