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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불편한 기억들은 흘려보내기로

by 서영수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도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무뎌지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 상대가 변하기만을 바라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흔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변화가 쉽지 않다고 해서 바뀌려는 노력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바뀌지 않는 사람과 변화하려 애쓰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그 노력의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선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 않은 일이다. 선입견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인식을 만든 건 내 탓이기도 하다.


"썼던 사람의 마음도, 받았던 사람의 마음도 이제 판이하게 달라져 버렸으니, 그 편지에 따라다니는 불쾌한 상황은 모두 잊어야지요. 제 철학 가운데에는 이런 것이 있어요. 기억하기에 즐거운 과거만 생각하라는 것이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글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쿨한 성격을 가졌다. 기억하기에 즐거운 과거만 떠올린다는 것은, 그녀가 유쾌한 성격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다아시가 그녀에게 빠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흘러간 것은 흘러간 대로 놔두는 게 낫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 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서 '기억하기에 즐거운 과거만 떠올리라'는 오스틴의 조언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처럼 느껴진다.


상을 치르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요즘, 엘리자베스처럼 즐거운 기억만 하기로 했다. 불편한 기억들은 그냥 흘려보내려고 한다. 어쩌겠는가. 그게 인생이고, 우리 삶인데. 어쩌면 이 또한 내 운명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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