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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말할 수 없는 감정

by 서영수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사랑의 갈증>에는 에쓰코가 자신이 흠모하는 사부로에게 주기 위해 양말을 사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그녀는 양말을 고르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한편 전보를 전하러 온 배달부가 사인을 하기 위해 꺼낸 에쓰코의 볼펜을 탐내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는 상대가 물건을 줄 때까지 끝없이 칭찬을 늘어놓는 습관이 있었고,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귀찮아진 에쓰코는 결국 볼펜을 아낌없이 줘버린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사랑하는 사부로에게 겨우 두 켤레의 양말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반면 졸라대는 배달부에게 볼펜을 주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 그럴 수밖에 없지.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일 따위는 쉽게 할 수 있어.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은 가볍고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모른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줘도 되는지부터 시작해, 어떻게 전해야 부담을 주지 않을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과연 마음에 들어할지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렵고, 사랑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랑은 언어로 단순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명확히 알기 어렵다. 결국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투, 눈빛, 순간순간의 감정과 드러나는 행동 등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하여, 사랑하는 이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 감정은 이유보다는 존재 그 자체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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